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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요약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_메이븐_Summary요약

by 림을위하여 2023.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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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부제: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 그러니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그냥 재미있게 살아라!”

                    벌써 마흔이 된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

        저자: 김혜남

        출판: 메이븐

 

 

Image#1 책 표지

 

안녕하세요?

오늘 제가 소개 시켜드릴 책은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 그러니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그냥 재미있게 살아라!” 라고 파킨슨병이라는 난치병에 걸린 저자가 22년간 병마와 힘든 싸움속에서도 비극이 아닌 희극으로 살 수 있었던 이유와 마흔 살에 깨닫고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책에 담았습니다. 제목은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라는 책입니다. 저자는 김혜남 입니다.

 저자가 겪었던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초 긍정의 마인드와 깨우침을 이 책을 통해 얻어 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지은이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립 정신병원(현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12년 동안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했다. 경희대의 대, 성균관대 의대, 인제대 의대 외래교수이자 서울대 의대 초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김혜남 신경정신과의원 원장으로 환자들을 돌보았다. 80 만 부 베스트셀러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문다>,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를 비롯해,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당신과 나 사이). <보이지 않는 것에 의미가 있다) 10여 권의 책을 펴내 130만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 또한 2006년 한국정신분석학회 학술상을 받은 바 있다.

정신분석 전문의로, 두 아이의 엄마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며느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그녀는 마흔살 까지만 해도 '내가 잘했으니까 지금의 내가 있는 거지' 라고 생각했다. 집이고 병원이고 환자들이고 자신이 없으면 큰일이 난다고 생각한 것이다.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원망한 적이 더 많았다.

그런데 2001년 마흔 세 살에 몸이 점점 굳어 가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나서 병마와 싸우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역할을 다 잘 해 내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를 닦달하며 인생을 숙제처럼 살아오다 보니 정작 누려야 할 삶의 즐거움들을 너무 많이 놓쳐 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것은 자신이 없는데도 세상이 너무나 멀쩡하게 잘 돌아간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들이닥친 불행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너무 억울하고, 사람들이 밉고, 세상이 원망스러워 아무것도 못 한 채 한 달 동안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아직 자신은 죽은 게 아니며 누워 있는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행히 병이 초기 단계라 아직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았다. 그래서 일어났고, 하루를 살았고, 또 다음 날을 살았다. 대신에 해야만 하는 일보다 하 고 싶지만 계속 미뤄 둔 일들을 먼저 하기 시작했다.

 

 쓰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 다. 그렇게 22년 동안 병마와 싸우며 진료와 강의를 하고, 두 아이를 키우고, 열 권의 책을 썼다. 사람들은 파킨슨병을 앓으면서 어떻게 그 일들을 다 할 수 있었느냐고 신기해 하지만 그녀는 담담히 말한다. 더 이상 인생을 숙제처럼 살지 않겠다고, 어차피 사는 거 재미있게 살겠다고 마음먹으니까 세상에 새롭고, 신기하고, 감탄할 만한 일들이 참 많았다고. 그래서 몸이 굳어 옆으로 돌아눕는 것조차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고통스러운 때도 있지만 고통과 고통 사이에는 덜 아픈 시간이 있고,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살아온 것뿐이라 고. 2014 1월 병이 악화되어 병원 문을 닫고 나서는 더 이상 환자들을 진료할 수 없게 되었고, 그 사이 크고 작은 수술을 다섯 차례 받으며 죽을 고비도 넘겼지만 그녀는 여전히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고 말한다.

삶이 힘들고 어렵고 좀체 나아질 것 같지 않아 보여도 어느 때나 즐길 거리는 분명히 있다. 그리고 즐길 거리가 다양한 사람일수록 불가피한 불운과 불 행 또한 잘 버틸 수 있다. 그래서 그녀는 앞으로 병이 더 악화되어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더라도 그때 그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하면서 재미있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벌써 마흔이 넘어 버린, 하루하루 잘 버터 내고 있지만 가끔은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도 딱 하나뿐이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니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그냥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번에는 용감히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느긋하고 유연하게 살리라.

그리고 더 바보처럼 살리라.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더 많은 기회를 붙잡으리라.

더 많은 산을 오르고, 더 많은 강을 헤엄치리라.

아이스크림은 더 많이 그리고 콩은 더 조금 먹으리라.

어쩌면 실제로 더 많은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일어나지도 않을 걱정거리를 상상하지는 않으리라.

 

-나딘 스테어의 시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중에서

 

 

 

[10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을 펴내며]

……………………………….

나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병마와 싸워 오다 보니 가끔은 아무나 붙잡고 푸념을 늘어놓고 싶을 때가 있고, 고통을 참을 수 없어서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때도 있다. 후회할 걸 뻔히 알면서도 타인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할 때도 있다. 늘 평정심을 잃지 않고 사람들에게 유쾌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이다.

명색이 정신분석 전문의로 30년 넘게 일해 오며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해 온 사람으로서 이처럼 못난 모습을 보이게 될 때마다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나는 그런 나를 용서하기로 했다. 하루를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내일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는 나 자신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늘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그것을 고치고 싶어 하는 당신은 지극히 건강하다. 잘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반성하며 내일은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당신은 어떻게든 성장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 이상 스스로를 닦달하지 말고, 매사에 너무 심각하지 말고, 너무 고민하지 말고, 그냥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지금껏 열심히 살아온 당신은 충분히 즐겁게 살 자격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당신을 늘 응원할 것이다. 그런 마음을 담아 원래 책에서 아들과 딸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담은 4장을 빼고, 대신 내 책을 읽은 적이 있는 벌써 마흔이 넘은 독자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들을 담았다.

정신분석가인 융의 표현을 빌자면 마흔에는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 나 또한 마흔이 넘었을 때 마음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래서 그럴 때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나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마흔에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들을 추려 정리한 이유다.

 

2022년 가을에

김혜남  

 

 

 

| PROLOGUE |

파킨슨병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내 인생은 끝났다고 절망했더랬다. 게다가 파건슨병 환자들이 겪는 끔찍한 고통을 내가 과연 견뎌 낼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아무것도 못 하고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절망한 채 누워 있는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게다가 다행히 병이 초기 단계라 아직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은데,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어났고, 하루를 살았고, 또 다음 날을 살았다.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왔다. 2014년 초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병원 문을 닫을 때까지 진료와 강의를 하며 다섯 권의 책을 냈고,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충실히 살아왔다. 무엇 보다 건강관리에 힘쓴 덕에 아직 치매가오지 않았고 사고력에도 문제가 없으며 우울증도 경미하다. 물론 몸 상태는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지만 그 속도가 느린 편이어서 이 책도 쓸 수 있었다.

내가 파건슨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면 사람들은 대부분 '참 안왰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어쩌다 한창일 나이에 몹쓸 병에 걸려 이런 고생을 하는가 안타깝다는 얼굴이다. 그러나 나는 괜찮다. 병이 이미 내 건강의 많은 부분을 앗아 갔고 앞으로 지적 능력까지 빼앗아 갈지 모르지만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이니 걱정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 그래서 걱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걱정으로 시간을 낭비해 버리기엔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다. 코앞에 있는 화장실에 가는데 5 분 넘게 걸린 적도 있고, 몸이 굳어 버려 옆으로 돌아눕는 것조차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24시간 내내 아픈 건 아니다. 고통과 고통 사이에는 반드시 덜 아픈 시간이 있고, 약을 먹어서 뜻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도 있다. 나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할지 상상하며 고통을 견뎌 낸다. 그래서 그 시간이 되면 운동을 하고, 친구와 수다를 떨고, 산책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딸을 위한 떡볶이도 만들면서 내 일상을 즐긴다. 아마도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 누군가 내게 물었다. 미국으로 유학 가서 정신분석 공부를 더 하고, 죽을 때까지 의사로 살고 싶다던 꿈을 병 때문에 포기하게 되어 속상하지 않느냐고. 전혀 속상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지난 30년 간 의사로 살았으면 됐다 싶다. 그러자 그가 나에게 또 물었다.

"아니. 그럼 아쉬운 건 없으세요? 후회되는 것도 없으세요?

(My mind: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참 얄밉다. 역지사지 해서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을아픈 분들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사람들 정말 밉다.)

 

돌이켜 보면 후회되는 게 왜 없겠는가. 그렇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 걱정이 별 도움이 안 되듯, 후회 또한 별 도움이 안 되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한 가지 후회하는 게 있다면 인생을 너무 숙제처럼 해치우듯 살았다는 것이다. 의사로,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말로 살면서 나는 늘 의무와 책임감에 치여 어떻게든 그 모든 역할을 잘해 내려 애썼다. 나 아니면 모든 게 잘 안 돌아갈 거라는 착각 속에 앞만 보며 달려왔고, 그러다 보니 정작 누려야 할 삶의 즐거움들을 놓쳐 버렸다. 아이를 키우는 기쁨도, 환자를 돌보는 성취감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닦달하듯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무엇이든 다 잘해 내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방치해 두었던 나 자신을 챙기며 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래서 컨디션이 좋은 날은 좋은 대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엔 그런 대로, 하고 싶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 둔 일들을 하며 하루를 재미있게 보내려고 애쓴다. 가끔 고통이 심할 때는 지치기도 하지만 괜찮다. 아픈 나의 손을 꼭 잡아 주는 사람들이 내 결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아직도 참 많다. 병 때문이기는 하지만 의사 일을 관두고 나니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 중국어 공부도 제대로 해 보고 싶고, 진짜 끝내주는 요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싶고, 서해 남해 동해를 한 바퀴 쭉 둘러보고도 싶다. 이 책에 공개한 버킷 리스트는 열 개밖에 안 되지만 내 마음속엔 더 많은 리스트가 있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에도 꿈꾸기를 멈추지 않아서인지 사는 게 재미있다.

앞으로 병이 다시 악화되어 책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더라도 나는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하면서 재미있 게 살고 싶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어차피 사는 거 재미있게 살다 가면 좋지 아니한가.

 

 

2015년 봄날에

김혜남

 

 

 

챕터1.  30년 동안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하며 깨달은 인생의 비밀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불행이 찾아올 때가 있다.

 

만약 그때 침대에 계속 누워 병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며 지냈다면 어땠을까.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치매에 걸리고, 우울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를 상상하며 그 시간을 보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테고, 그저 의미 없는 하루하루가 반복되었을 것이다.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쳐올 때가 있다.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 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지는 내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달려 있다. 똑같은 12년이라도 그 결과가 확실히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내가 2001 2월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깨달은 삶의 진실이다.

 

 

완벽한 때는 결코 오지 않는 법이다

1987년 탈 벤 샤하르는 스물한 살의 나이에 이스라엘 전국 스쿼시 선수권 대회에서 최연소 챔피언이 되었다. 우승한 순 간 그는 가슴이 벅찼고 행복했지만 세 시간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행복은 사라져 버렸다. 스쿼시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스포츠도 아니고 선수도 몇천 명밖에 안 되는데, 거기서 1등을 한 게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그는 세계 챔피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영국으로 떠났다. 하루라도 빨리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었던 그는 한시도 쉬지 않고 고된 훈련을 거듭했다. 그 결과 영국으로 간 지 1년 만에 청소년 메이저 대회의 결승전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실수하면 안 된다는 불안감과 긴장감에 시달리던 그는 갑자기 발에 쥐가 나더니 팔다리에도 쥐가 나 눈앞에서 1등을 놓치고 말았다. 게다가 1년 가까이 무리하게 몸을 혹사시킨 탓에 스쿼시마저 그만두어야 했다. 하지만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야만 하고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 성향은 그가 운동을 그만두고 하버드 대학교에 들어간 뒤에도 변하지 않았다. 저서 완벽주의자를 위한 행복 수업>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모든 교재를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읽어야 하고, 모든 리포트와 시험에서 완벽한 점수를 받아야 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했고, 그래도 실패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리포트를 제출하거나 시험을 치르고 나면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결과 그는 항상 최고점을 받았지만 불행했고 심지어 나중에는 공부 그 자체를 싫어하게 되었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하 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 몸도 마음도 지친 그는 점점 더 불행해져만 가는 자신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불행과 불안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는데 오랜 연구 끝에 깨달은 것은 하나였다. 완벽에 대한 집착과 강박으로 인해 끊임없이 뭔가 를 해야만 했고, 그럼에도 자꾸만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돼 늘 불안했으며, 그로 인해 삶은 피폐해졌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긍정 심리학을 연구한 그는 현재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되어 학생들에게 과거의 자신처럼 불행한 완벽주의자로 살지 말라고 조언한다. 완벽주의를 포기한다고 해서 절대 삶이 무너지지 않으며, 오히려 삶을 더 즐기면서 잘 살게 된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나는 그의 말에 십분 동의한다. 실패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자들은 '사는 재미'를 모른다. 매일같이 높은 목표를 세워 놓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오늘을 다 바치기 때문이다. 목표를 이루지도 못했는데 도중에 삶을 즐긴다는 건 그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놀고 싶지만 내일 볼 시험을 걱정 하느라 놀 수 없는 학생처럼 말이다.

 

문제는 완벽주의자들에게는 매일이 시험이라는 데 있다. 심지어 그들은 매일 100점을 맞고 싶어 한다. 그들에게 '아이 고, 실수할 수도 있지 뭘 그래요?'라고 말하는 건 실례다. 그들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사람들에게 바로 외면당 하고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입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실수하지 않기 위해 완벽한 준비를 꿈꾼다. 대학교 입학 전에 대학교에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준비하고. 취업 전에 회사에서 필요한 것들을 다 준비하고, 엄마가 되기 전에 엄마 될 준비를 마치고 싶어 한다. 결혼하려면 아파트가 마련되어 있어야 하고, 경제적 능력이 없이는 애를 낳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이럴 땐 어떡하지?. '저럴 땐 어떡하지? 하면서 경우의 수를 따져 볼수록 준비 목록은 더 늘어나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느라 결국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다. 계속 준비만 하다가 인생을 다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어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다. 내일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그 모든 위험성을 예측하고 예방해 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운전면허 필기시험은 60점 이상이면 통과인데, 하나라도 틀리면 안 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과 '60점만 넘으면 되지 뭐' 하는 사람의 준비 과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60점만 넘으면 똑같이 필기시험을 통과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하나라도 틀리면 큰일이 날 것처럼 불안에 떨면서 시험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 어쨌 든 60점만 넘으면 되는 것 아닌가. 인생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준비해도 '완벽한 준비'란 있을 수 없다. 회사가 원하는 스펙을 다 채우려다 보면 서른을 훌쩍 넘겨도 취업하기가 어렵고, 꼭 내 집 마련을 한 뒤에 결혼하려면 언제 결혼할 수 있을 지 까마득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니 더 이상 완벽한 때를 기다리지 말고, 60퍼센트만 채워졌다고 생각되면 길을 나서 보라.

어느 날 후배가 한숨을 푹 쉬며 나에게 이야기했다.

"집에 없는 게 너무 많아요."

신접살림을 차렸는데, 정신없이 결혼하다 보니 빠뜨린 게 너무 많다는 것이다. 사야 할 것은 많은데 돈은 너무 부족하고 그래서 속상하단다. 그릇 하나도 왜 이렇게 비싸냐며 한숨을 쉬는 그녀에게 내가 그랬다. 돌이켜 보면 나도 돈 걱정을 하긴 했지만 하나하나 직접 사서 없는 살림 채워 나가는 재미가 쏠쏠했던 것 같다고. 과일칼이 없어서 큰 칼로 과일을 깎아 먹고 밥주걱이 없어서 숟가락으로 밥을 뜨며 웃던 기억, 이거 살까 저거 살까 고민하다가 돈이 없어 비싼 건 못 사고 싼 걸 샀다가 후회한 기억, 큰맘 먹고 비싸게 주고 샀는데 먼지만 풀풀날리는 가구를 보며 골머리 앓던 기억 등등 살림살이를 마련하며 생긴 추억도 한가득하다. 가구 몇 점 없다고, 그릇 몇 개 없다고 죽는 건 아니다. 어떻게든 살아진다. 그리고 밥 주걱을 사고 과일칼을 샀을 때 마음이 뿌듯했으며, 빈자리를 하나둘씩 필요한 가구로 채워 나갈 때마다 내 힘으로 뭔가 한 것 같아서 기뻤다. 살림살이를 채워 나가는 재미가 이런 거구나 느낀 것도 그때였다. 그래서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 든 걸 준비할 수도 없었을 테고, 아무리 준비해도 살 게 분명 또 있었을 거라고. 그러니 조금씩 살림살이를 채워 가라고, 서둘러 준비했으면 오히려 집에 안 맞는 가구들을 사서 후회했을 수도 있다고. 조급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이다. 사진 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는 평생 생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헤맸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완벽한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내 삶에는 늘 빈 구석이 많았고, 그 빈 구석을 채우는 재미로 살아왔고, 앞으 로도 그럴 테니까. 나는 가고 싶은 길을 갈 것이다. 준비가 좀 덜 되어 있으면 어떤가. 가면서 채우면 되고 그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인 것을.

 

 

딱 한 발짝만 내디뎌 볼 것

 

누군가 파킨슨병을 묘사할 때 온몸을 밧줄로 꽁꽁 묶어 놓고는 움직여 보라고 하는 것이 나 마찬가지라고 했는데 그 상태를 직접 경험하는 것은 커다란 고통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파킨슨병 환자들의 경우 소변이 금방 마려워 화장실에 자주 가는데 밤에도 예외는 아니 다. 겨우 눈을 붙였는데 소변이 마려워 잠을 깨고 화장실에 갔다 오면 한두 시간 잠들었다가 다시 화장실에 가는 일이 반 복되었다.

그날도 그랬다. 새벽 1시쯤 소변이 마려워 눈을 떴다. 힘겹게 일어선 다음 화장실에 가려고 발을 떼는데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꽈당 넘어질 뻔했다. 분명 내 다리인데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화장실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 도저히 거기까지 갈 수가 없었다. 땀을 뻘뻘흘리며 화장실 쪽을 바라보며 움직이려다 앞으로 넘어지길 몇 번, 이대로 주저 앉아 오줌을 싸 버릴까 싶었다. 다 큰 어른이 바지에 오줌을 싸게 될 줄이야. 비참하고 고통스러운데 집에 나 혼자뿐이니 더 막막했다.

그러다 화장실 문을 바라보는 대신 발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발을 한 발짝 천천히 떼었다. 신기하게도 발이 움 직여졌다. 발을 쳐다보면서 다시 한 발짝 움직였다.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화장실에 도착해 있었다

', 한 발짝이구나

내가 가려는 먼 곳을 쳐다보며 걷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에서 발을 쳐다보며 일단 한 발짝을 떼는 것, 그것이 시작이며 끝이다.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데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흔히 높은 계단을 오를 때 저 위를 보고 가면 못 올라간다는 말이 있다. 분명 많이 올라왔는데 계단 끝까지 가려면 아직 도 멀었다는 사실에 절망하여 주저앉게 되기 때문이다. 주저앉아 언제쯤 저 끝까지 갈 수 있을까 생각하다 아예 올라가기 를 포기하게도 된다. 그러나 도저히 못 갈 것 같은 순간에도 발을 쳐다보며 한 발짝 떼는 것은 언제든 가능하다. 그리고 계 단 끝을 보며 올라갈 때는 '힘들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고 올라가는 일 자체가 고통스러운데, 신기하게도 발을 쳐다보고 한 발짝을 떼는 데 집중하면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온 신경이 그저 한 발짝을 내딛는 데만 집중되기 때문이다.

"선생님, 한 발짝을 떼는 것은 쉽죠. 그런데 만약에 그 길이 아니면 어떡하죠? 잘못된 길인 줄 모르고 한 발짝 한 발짝 열심히 갔는데 낭떠러지에 도착하면 어떡하느냐고요."

어느 환자가 볼멘소리로 나에게 했던 말이다. 내가 몇 년 동안 진료를 맡았는데 병 때문에 도저히 진료가 불가능해서 다른 의사를 소개해 주자 그는 나에게 울면서 전화를 했다.

“선생님, 그 의사 선생님이 저한테 맞는 치료자일까요? 저를 도와줄 수 있는 분이 맞느냐고요. 만약에 아니면 어떡하죠?"

나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와 치료자가 맞을지 안 맞을지는 둘이 서로 만나서 치료를 진행해 봐야 알 수 있기 때문 다. 내 딴엔 미안한 마음에 최대한 그와 잘 맞을 것 같은 치료자를 연결해 줬지만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

"만약에 잘 맞으면 계속 그 의사 선생님과 치료를 진행하면 되고, 안 맞으면 다른 치료자를 찾아가면 되죠. 그런데 지금처럼 울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당신의 상태가 더 나빠질 거라는 건 확실해요. 정말 미안하지만 내가 더 이상 당신을 진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요."

이 길이 맞을까 저 길이 맞을까,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어떤 길로 가는 게 맞을지는 모르지만 걸어간 길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나의 몫이다. 배우자를 찾는다고 했을 때 그가 나와 맞을지는 누구도 모르는 거다. 연애할 때는 괜찮았는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안 맞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배우자를 내 남편 혹은 내 아내로 만들어 가는 건 내 몫이다. 물론 선택한 길이 틀릴 수도 있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낭떠러지에 도착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게 두려워 한 발짝도 떼지 않으면 영영 아무 데도 못 가게 된다.

그리고 내 경험상 틀린 길은 없었다. 실패를 하더라도 실패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면 그것은 더 이상 실패가 아니었고, 길을 잘못 들었다 싶어도 나중에 보면 그 길에서 내가 미처 몰랐던 것들을 배움으로써 내 삶이 더 풍요로워졌다. 때론 내 뜻 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 때문에 화가 난 적도 있지만 분노의 힘이 나를 살게 한 적도 있다. 그러므로 가장 빠른 직선 코스 로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버린다면 한 발짝을 떼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이유는 없다. 남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 봐야 그 기쁨을 같이 나눌 사람이 없다면 오히려 그게 더 슬픈 일이다.

그러니 어떤 순간에도 삶을 포기하지 말고 용기 내어 일단 한 발짝만 내디뎌 보라. 나는 화장실에 가기까지 5분이 걸렸 지만 도착한 순간 해냈다는 기쁨에 환호성을 질렀다. 당신이 누구든, 어떤 상황에 있든 한 발짝을 내디딘 순간 알게 될 것이다. 용기 내기를 참 잘했다는 것을.

 

 

지금껏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

 

오래전 일이다. 한 시골 할머니가 진료를 받으러 와서는 한참 동안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었다.

"근데 원장님은 안 계세요?

아니, 내가 원장인데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는 걸까 싶었다. 알고 보니 내가 버젓이 흰 가운을 입고 있어도 할머니 눈 에는 의사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할머니가 살아왔던 남존여비 세상에서는 여자가 의사를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의과대학에서 여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30퍼센트를 넘고, 그만큼 여의사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여자 후배들은 나를 찾아와 아이를 낳는 게 두렵다고 했다. 환자보랴, 논문 쓰라, 일도 산더미처럼 데 언제 아이를 낳고 키우느나는 것이다. 아이를 잘 보살필 자신도 없는 데다가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소홀히 하게되어 승진에서 밀리고 도태될까 봐 두렵다고도 했다. 그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도 워킹맘의 길은 아직도 힘든 측면이 많이 있다. 후배에게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다고 선뜻 권하지 못하는 이유다.

나는 인턴 때 대학 동기와 결혼했는데 원치 않게 곧바로 임신을 하게 되었다. 다들 힘든데 임신했다는 이유로 일을 줄여 달라고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과를 돌 때였다. 그날따라 중환자실에서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해 야 하는 상황이 잇달아 벌어졌다. 환자 세 명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위급한 상황이다 보니 동료와 선배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데 나라고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급한 대로 앰부백(수동식 인공호흡기)을 잡고 또 일이 터지면 달려가서 심장마사지를 했다. 어느 순간 배가 뭉치는 걸 느꼈지만 아이가 무사하기만을 바라며 환자를 살리는 일에 매달렸다. 눈앞에서 환자 가 죽어 가고 있는데 "나 임신 중이에요"라며 뒤로 빠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다행히 환자들이 고비를 넘긴 그날 밤 나는 하혈을 했고 끝내 유산을 하고 말았다. 처음이었더랬다. 의사가 된 게 너무 후회되었다. 무리하게 심폐소생술만 안 했어도 아이를 잃지 않았을 텐데 배 속의 아이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 감에 한참을 울었다. 그 후로도 얼마 동안은 아이를 잃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내 힘들어했다.

그러나 정말 시간이 약인가 보다. 어느덧 나는 두 아이를 낳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의사 생활을 계속했다. 병원 일 하랴. 집안일 하랴, 두 아이 키우라, 시부모 봉양하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남편과 가족들 모두 도와주지 않는데 네 가지 역할을 다 하려고 하니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딴에는 최선을 다하는 건데 병원에서도 집에서도 그걸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엄마로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감히 힘들다고 말하지도 못했다. 그러는 사이 아이를 키우는 것도, 병원 일을 하는 것 도, 집안일을 하는 것도 모두 다 숙제처럼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이 되어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버터야 하나. 한숨이 먼저 나왔다. 어느 순간 나는 웃음을 잃어버렸다.'왜 나 혼자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나' 라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남편과 가족들을 원망하고 불공평한 세상을 원망했다.

돌이켜 보면 그때 그렇게라도 버티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내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무감과 책임감만으로 하기 싫은 숙제를 하듯 살았던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내가 지금껏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 그것은 바로 그 때 삶을 즐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기쁨을 즐기기는커녕 행여 아이에게 부족하고 좋은 엄마가 안 될까 봐 스 스로를 닦달하면서 살았고, 일의 기쁨과 행복을 느끼기보다 행여 뒤처질세라 쫓기듯이 일을 하고 공부를 했다. 삶을 즐기 려고 마음먹었다면 시간을 분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 가족에게 도움을 청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삶을 즐기려고 마음먹었다면 집에 가자마자 저녁 준비한다고 서두르기 전에 아이와 눈 한 번 더 마주치며 안 아 주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삶을 즐기려고 마음먹었다면 출근하며 하늘 한 번 쳐다볼 여유를 가지고 환자들을 기 쁘게 맞이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누군가 나에게 삶의 즐거움을 포기한 대가로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 시절에 가졌던 죄책감과 피해의식은 나의 기쁨을 앗아 가고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으며,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을 뿐이 다. 죄책감과 피해의식에 시달릴 시간에 삶을 즐길 아이디어를 내서 그걸 실천에 옮겼더라면 이렇게까지 후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를 하루 못 씻기고 재웠다고 해서 큰일 나지 않는다. 일이 많으면 하루쯤 시부모 저녁상을 못 차릴 수도 있는 법이 다. 남편에게 아이를 봐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해도 된다. 그렇게 해서 얻은 시간에 친구들을 만나 밀린 수다를 떨어도 좋을 일이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듣고 싶은 음악을 들을 시간이 정말 없을까? 마음만 먹으면 끝없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삶의 즐거움이다.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내가 아는 한 워킹맘은 너무 지치고 힘든 날에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한 시간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가만히 있곤 했다. 가족들에게는 차가 밀려 귀가가 좀 늦어질 것 같다는 거짓말을 하고선 말이다. 나는 그녀에게 잘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삶을 즐기는 것은 '~해야 한다'는 말을 줄이고, '~하고 싶다'는 말을 늘려 나가는 것이 그 시작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못 당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그리고 의무감과 책임감만으로 살아가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눈앞의 놓인 과제들에 내 인생을 다 내어 주기보다는 좀 더 멀리 보며, 나를 더 아껴 주고, 틈틈이 나에게 즐거운 음악을 들려주고, 달콤한 휴식을 허락할 것이다.

 

 

챕터2.  환자들에게 미쳐 하지 못한, 꼭 해 주고 싶은 이야기

 

내가 열등감을 가지고도 즐겁게 사는 비결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집에 놀러 온 손님들은 그 아이를 보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랬다. "이 집은 왜 셋째 딸이 제일 안 예뻐?" 큰언니와 둘째 언니 그리고 여동생은 얼굴도 조막만 하고 하얀 피부에 눈도 큰 미인이고, 남동생은 누가 봐도 잘 생겼는데 셋째 딸인 여자아이는 자기가 봐도 그다지 예쁜 구석이 없긴 했다. 그래서 여자아이는 자기가 너무 못생겼다고 생각했고 더 나아가 자신이 늘 부족하다고 여겼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점점 두려워졌다. 사람들 앞에만 서면 자꾸 떨려서 발표도 잘 못했다. 그래서 학창 시절 반장 같은 걸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여자아이는 바로 나다. 어쩌다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모두 깜짝 놀라곤 했다.

"에이, 설마요? 선생님은 열등감 같은 거 전혀 없으시잖아요. 동안에 귀여우시고 발표할 때 전혀 떨지 않으시면서 무슨 말씀이세요."

하긴 내가 가진 건 미모뿐이라며 우스갯소리로 잘난(?) 척하고, 학회에서는 제법 인기 강사로 평가되니 그런 말을 할 법 도 하다. 그러나 어릴 적 나는 정말로 열등감이 많았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받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외모를 보면 예쁜지 안 예쁜지부터 따지는 세상에서 예쁘지 않다고 평가받는 것은 여자아이에게 굉장한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못생긴 나를 좋아해 주지 않 을 거야'라는 두려움에 떨며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예쁜 짓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렇게 해야만 자신을 봐 주는 세상 과 사람들에게 분노하게 된다. 그래서 어린 시절 아이에게 못생겼다는 말은 자존감 형성에 있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자존감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 형성된다. 자존감이란 말 그대로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인데, 자신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때 만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반겨 주고 사랑해 주며, 웬만한 실수도 이해하고 받아 주면 우리는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 주지 않으 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아름답고 괜찮은 사람인지 모른 채 스스로를 창피해 하고 자책하면서 불안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사실 열등감은 어느 누구에게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일을 다 잘하거나 모든 것을 완벽히 갖춘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등감의 뿌리가 너무 크고 깊으면 그 사람의 인생은 어둡고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열등감이 크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이 못나고 무가치하다고 믿기에 행복해질 수 있는 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애당초 포 기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열등감이 늘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나는 못생겼고 부족하다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책을 많이 읽었고 공부도 더 열심히 했다. 남에게 내 부족한 점을 들키지 않기 위해 뭘 하든 더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학회에서 발표를 해야 하거나 원고 쓸 일이 생기면 내가 읽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읽는다. 관련 자료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에 대한 나름의 결론을 얻어 누가 질문을 하더라도 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것을 읽고 공부한 덕에 나는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만약 열등감이 없었다면 나는 성장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예쁘고 완벽하다면 더 이상 노력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러므로 열등감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든 숨기려고만 하지 말고 다른 장점을 키워 열등감을 점점더 작아지게 만드는 것이 좋다. 그러나 열등감이 크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주어진 일을 견디고 해 나갈 뿐이지 자신이 주인이 되어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지 못한다. 자신에겐 그런 능력이 없고 해 봤자 실패할 것이 뻔하다고 생각해 미리 포기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인들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가 되어 당하기만 한다. "못생겨서 싫어"라는 무례한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고, "너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구나"라는 비난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화를 내며 부당하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조차 아무 말 못 하는 것이다.

물론 못생기고 무언가 부족하다는 게 장점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자신의 존재 자체가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우리 주위에는 외모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매력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또 부족한 면도 있지만 탁월한 장점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사람들도 있다. 즉 외모가 좀 못하고 부족하다는 사실이 인생을 망치는 이유는 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못생겼고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내 존재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을 들여다보라. 누구나 부족한 구석이 있지만 찾아보면 좋은 구석도 많다. 그런데 부족한 것만 너무 커 보이고 자꾸만 주눅이 든다면 그것은 내가 진짜로 그런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 들의 시선에 얽매여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자존감이 낮다면 우선 잘못된 시각부터 교정할 필요가 있다. 열등감이 너무 깊어 모든 것이 두렵다고 말하는 환자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당신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인생은 흘러가게 되어 있어요. 당신이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보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고, 당신이 스스로를 실패자로 보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갈 거예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바라보는 시각 말고, 당신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그것부터 결정하세요."

스스로를 한심하고, 모자라고, 허둥대는 결점투성이로 바라보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착하고, 남을 배려하고,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바라보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똑같은 나인데도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의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틀리면 고치면 된다고 생각하고, 부 당한 지적에는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늘 피해만 본다는 사고에 물들지 않고, 타인과 대등한 관계에 설 수 있는 태도 또한 나를 믿고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내가 나를 믿지 않는데 누가 나를 믿어 줄 것이며, 내가 나를 보호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보호해 주겠는가. 게다가 사랑받기 위해 다른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해 봐야 그 기대를 다 충족시킬 수 없을뿐더러 결국에는 나 자신을 잃고 공허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니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고 열등감의 늪에서 빠져나와라. 신기한 것이, 면담을 하다 보면 환자가 좋아지 고 있다는 최초의 사인은 얼굴에서부터 나타난다. 환자들이 예뻐지고 멋있어지는 것이다. 바로 자신감의 회복을 알리는 사인이다. 자신감이 회복되고 자존감을 찾게 되면 얼굴이 편안해지고 피부가 좋아지면서 빛이 난다. 또한 자신을 억압하 고 잡아 끌어내리던 무의식적인 힘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능력도 발전한다. 잃어버린 자존감을 되찾고 새로 태어난 기 분으로 세상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정말 아름답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면 자신의 자존감부 터 체크해 볼 일이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빛이 나고 멋있어 보이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챕터3.  내가 병을 앓으면서도 유쾌하게 살 수 있는 이유

 

22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깨달은 것들

나는 내가 당연히 죽을 때까지 의사로 살 거라고 생각했다. 70~80세가 되어도 의지가 있다면 환자를 면담하고 치료하는 일이 가능할뿐더러, 환자들이 스스로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다. 치료를 하고 있으면 왠지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병이 내게 찾아오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파킨슨병 판정을 받은 지도 벌써 22, 나에게 파킨슨병은 불청객인 데 어느새 사랑방을 딱 차지하고는 도통 갈 생각을 안 하는 손님이다. 게다가 얼마나 까탈스러운지 하루에 삼시 세끼를 반드시 차려 줘야 그나마 잠잠하고 안 그러면 집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때로 나를 피곤하게 만들고, 속상하게 만들고, 화가 나게 만든다. 하지만 까칠한 손님으로부터 배운 것도 참 많다.

 

1. 단점을 애써 고치려 하지 말고 그냥 장점에 집중할 것

파킨슨병에 걸리고 나서 나는 집을 지고 다니는 달팽이가 된 기분이었다. 내 몸이 집이고 내 머리가 이걸 끌고 가는데, 옛날에는 머리에서 명령을 내리면 몸이 알아서 착착 움직인 반면 지금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집을 끌고 가기가 여간 어 렵지 않은 것이다. 내 경우 오른쪽 다리가 먼저 약해지기 시작해 그 다리를 끌게 되었는데, 어떻게든 오른쪽 다리에 힘을 주고 움직여 보려고 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대신 튼튼한 왼쪽 다리에 힘을 줘서 움직이면 오른쪽 다리도 같이 따라갔다.

그때 새삼 깨달았다. 힘이 남아 있는 강한 쪽을 더욱 강화시켜서 움직이면 약한 쪽이 따라가는데, 약한 쪽에 포커스를 두 고 움직이려고 하면 죽어도 안 움직인다. 즉 약한 부분인 단점을 고치려고 애쓰는 것보다 오히려 강한 부분인 장점에 집중 해 그것을 강화시키는 게 낫다.

못하는 것을 잘하려고 하면 낭비되는 에너지가 너무 많다. 그러니 단점은 그냥 두고 그 시간에 장점을 더 키워 나가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뛰어난 장점이 단점을 커버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단점 때문에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고, 남들이 그 단점을 공격해도 끄떡하지 않을 수 있다. 탁월하게 잘하는 게 있는데 뭐가 두렵겠는가. 그래서 약한 부분을 두려워하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진정 강한 사람이라고들 하는 것이다.

2. '마이크로 월드'를 발견하다

본과 3학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집으로 걸어오다가 주위를 둘러봤는데 나뭇잎들이 다 떨어져 있었다. 아니, 단풍이 든 줄도 몰랐는데 어느새 낙엽이 지는 늦가을이 되어 있을 줄이야.

공부하느라 도서관에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정신이 없긴 했지만 뭔가 중요한 걸 놓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때뿐 나는 또다시 바쁘게 살면서 참 많은 것들을 휙휙지나쳐 갔다.

그런데 병으로 인해 천천히 걷거나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지금껏 보지 못했던 세상을 발견했다. 세상을 구석구 석 바라보며, 물방울같이 아주 사소한 것에도 세상의 이치와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유독 고통스러웠던 밤이 지나가고 새벽이 밝아 오는데 해가 뜨기 직전 하늘이 그렇게 멋있는 줄 미처 몰랐었다. 예전에 그냥 푹 떠서 금붕어 밥을 줄 때는 몰랐는데 천천히 주면서 금붕어들을 보니 조그만 입을 오물거리는 게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막 잠든 아기의 입가에 머무는 미소도 아름답고, 깜깜한 골목을 비추는 가로등 불빛도 아름답 고, 내가 잠깐 잠든 사이 세상을 하얗게 뒤덮어 버린 설경도 아름답다.

구로야나기 테츠코의 소설 《창가의 토토》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어쩌면 세상에서 진실로 두려운 것은 눈이 있어도 아 름다운 것을 볼 줄 모르고, 귀가 있어도 음악을 듣지 못하고, 마음이 있어도 참된 것을 이해하고 감동하지 못하며 가슴의 열정을 불사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

나도 파킨슨병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고 살면서도 그걸 왜 굳이 알아야 하느냐고 반문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지는 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옆 사람의 손이 얼마나 따스하고 위안이 되는지,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경이로운지 조금은 알 것 같다.

 

3. 힘들고 아픈 시간은 언젠가 끝나게 되어 있다

한 발짝 떼는 것으로도 안 되어 기어 다녀야 할 때, 혹은 기어 다닐 수도 없어 꼼짝없이 누워만 있어야 한 때 그 고통을 견디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누군가는 그랬다. 모든 뼈와 살이 잠자리 날개처럼 떨리는데 너무 아프다고, 그냥 이대로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이제 그만 아프고 싶다고.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완칵 쏟아졌다. 부끄럽지만 나 또한 너 무 아파서 단지 고통을 멈추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창문 밖으로 뛰어내릴까 생각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가족들 이 모두 잠든 후 새벽녘에 아파서 자지도 못한 채 고통을 참아야 할 때면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 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죽으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어떻게든 아픔을 견디다 보면 아픔이 조금은 수그러 드는 때가 반드시 왔기 때문이다. 고통이 24시간 내내 똑같은 강도로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고통과 고통 사이에 조금은 덜 아픈 시간이 분명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을 기다렸다. 고통이 조금 수그러드는 시간을 기다리고, 약을 먹어서 움직 일 수 있는 상태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아픔이 덜해 움직일 수 있거나 약 기운으로 걸어 다닐 수 있을 때는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산책을 나가고, 장을 보러 가기도 하고, 친구와 수다도 떨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에게 기다림은 언젠가부터 희망이었다. 덜 아프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반드시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 래서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무엇을 하면 좋을까 상상하며 고통을 버려 냈다. '어제는 꼬리뼈까지 아팠는데 오늘은 옆으 로 눕는 것도 되네. 몸을 다 못 움직여도 손가락은 맘대로 움직일 수 있네. 정말 다행이다. 오늘은 약을 먹고 두 시간밖에 못 버텼는데 내일은 어떨까.' 어제보다 오늘이 나으면 다행이지만 오늘이 어제보다 안 좋을 수도 있다. 그래도 쉽게 절망하지 않는다. 내일 조금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파킨슨병에 걸린 지 이제 22, 그동안 나는 크고 작은 수술을 다섯 번 받았고 병은 악화되었다 조금은 나아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오늘도 많이 아팠지만 몇 시간 기다리고 있으니 덜 아픈 시간이 찾아왔다.

누구나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을 때는 언제 이 고통이 끝날지 몰라 절망하게 된다. 하지만 언젠가 힘든 시간들이 지나가 고 좋은 시절이 찾아온다고 생각하면 오늘 하루를 다르게 보낼 수 있다. 그러니 인생의 겨울을 지나고 있다면 기억해 두기 바란다. 당신에게도 봄은 꼭 올 것이다.

 

4. 겸손을 배우다

언젠가부터 환자들이 나보고 그랬다. 달라졌다고, 어느 순간부터 내가 한결 편안해 보이고 표정도 부드러워졌는데 도대체 그 비결이 뭐냐고. 그러면 나는 웃으며 말한다.

"병이 제 스승이지요."

파킨슨병을 앓으며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힘이 조금은 커진 것 같다. 그래서 예전 같으면 내가 옳기 때문에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애를 썼을 텐데 지금은 기다린다. '저 사람이 아직 받아 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구나. 언젠가 저 사람도 준비가 되면 받아들이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예전 같으면 내 한계 도 모른 채 나 잘난 줄 알고 살았을 텐데 이제는 그 한계를 알기에 겸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 실수도 쉽게 인정하게 되었다. "그건 내 실수다. 당신은 아직 준비가 안 되었는데 내가 너무 서둘러서 당신이 상처를 받은 것 같다. 정말 미안하 다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5. 유머의 힘은 역시 세다

사람들이 나의 병에 대해 알고 나면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어떻게 위로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먼저 웃으며 그런다.

"제가요. 옛날에는 가진 거라곤 돈하고 미모밖에 없었거든요. 근데 나이가 드니까 병하고 빚밖에 안 남았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심각한 표정을 풀고 나를 대하는 걸 불편해하지 않는다.

내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나는 병자다'라며 늘 심각하고 우울하게 살기는 싫다. 나는 여전 히 농담을 즐기고 사람들과 웃으며 살고 싶다. 그래서 음식 값을 계산할 때도 그런다.

"제가 다리가 불편하니까 제일 좋은 게 뭔지 아세요? 음식 값을 안 내요. 제가 계산대에 도착하면 사람들이 이미 다 계산한 뒤더라고요. 근데 오늘은 제가 살 기회를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런데 참 신기한 게 그렇게 유머를 던지고 나면 내 병이 가볍게 느껴져서 기분이 좋아진다. 유머가 병의 무게를 줄여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내친김에 내가 나에게 붙인 별명도 있다. '쓰리 아워 우먼(3-hour woman)' 약을 먹으면 세 시간 동안은 괜찮아서 만든 별명인데 원더우먼은 아니지만 나름 괜찮은 별명인 것 같다. 별명을 사용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쓰리 아워 우먼 납시오!, "요즘은 쓰리 아워 우먼이 아니라 투 아워 우먼(2-hour woman)이야.” 그런데 역시 유머의 힘은 세다.  유머를 한 사람 이나 유머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잠시나마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에서 벗어나 밝게 웃게 해 준다.

그럼에도 나를 시시때때로 괴롭히는 병 때문에 많이 지친 날에는 암 투병 중인 이해인 수녀의 시 '병상 일기'를 읊조리며 힘을 낸다.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나를 가로막은 것은 바로 나였다 ***

예전에는 나이 들어 간다는 게 남의 일인 줄만 알았다. 남들은 다 나이 들어도 나만은 늙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 은 나의 몸과 마음에 그 흐름의 흔적을 새기고 어김없이 나를 여기까지 실어 왔다. 65, 이제 내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은 살아온 시간보다 많지 않다. 난 아직도 어린애 같은 부분이 많은데, 아직 사춘기 소녀처럼 충동적이고 감정적이며 감상적인데, 아직도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세월보다 많지 않은 나이가 되어 버렸다.

내가 걸어온 길은 어떠했던가? '지난 세월이 꿈만 같다'라는 말은 소설 속 노인들이나 내뱉는 한탄인 줄 알았는데, 어렴 풋한 기억 속에서 내가 살아온 날들이 아득한 꿈처럼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살아오면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숙제하듯

헉헉대며 살아온 날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남들 따라 숨 가쁘게 달려온 날들, 그 세월 속에서 내가 놓쳐 버린 것들이 아쉬움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그저 눈을 뜨고 바라봐야만 한다. , 인생의 덧없음이여!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본다. 같이 늙어가는 남편과 동료, 친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는 예전에 내가 그랬듯 호기심으로 가득 차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재잘대면서 종종걸음으로 따라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길었든 짧았든 나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이 웃으며 손 흔드는 모습도 보인다.

새삼 그 모든 것이 아직 내 주위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된다. 많은 것을 잃었다고만 생각했는데 내가 떠나보낸 것보다 남아 있는 것이 더 많구나. 수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수많은 상처를 주며 살아왔는데 부족하기만 한 나를 사랑해 주고 염려해 주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구나. 문득 이 모든 것이 너무도 감사하다.

난 지나간 세월을, 그 세월의 꿈들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모두 내 안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당장 눈앞의 것만 보는 근시안적인 내 눈이 미처 그걸 보지 못했을 뿐이다. 잃어버린 것을 슬퍼하느라 나에게 다가오는 소중한 것들에 감사할 줄 몰랐다. 훨씬 더 행복할 수 있었는데 만족을 모르는 내 욕심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 대한 욕심이 그 어떤 일을 해도 늘 나를 불만족스럽게 만들었다. 남들보다 더 똑똑하고 빈틈없어 야 하며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나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나의 행복을 가로막아 온 것이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지는 않았다. 태어난 것은 내 뜻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생명을 얻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행복해지길 원한다. 그러면서도 행복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 착각하며 살아왔다. 어릴 적 나에게 무한한행복감을 안겨준 부모님의 보살핌과 사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일까. 나는 아직 도 그런 사랑과 행복을 간절히 바란다. 혹시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면, 내가 더 성공하고 완벽한 사람이 되면 그때의 무한한 행복을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 기대 때문에 난 항상 짓눌리고 행복을 느낄 수 없었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인데도, 완벽해야만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어릴 적 나의 불안이 항상 나를 따라다니며 행복을 놓치게 만들었다.

무엇인가를 더 원하고, 그것을 손에 넣는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원하던 것을 손에 넣는 순간 바로 우리는 더 큰 것을 원하게 된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데 그에 비해 내가 가진 것이 늘 부족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행복은 오히려 덜어 냄으로써 찾아온다. 가지지못한 것들에 대한 욕심을 덜어 내는 것, 나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를 포 기하는 것, 세상은 이래야 하고 나는 이래야 된다는 규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그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의 나와 세상을 똑바로 보고,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지름길이다.

지나친 이상화에서 벗어나야 나와 타인에 대해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으며, 그래야 서로 감싸 주며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어쩌면 이 너그러움을 배우는 과정이 바로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과정이며,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삶을 깊게 이해하는 법을 배 우는 과정이다.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삶이라는 고된 강을 열심히 헤엄쳐 왔기에 충분히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를 짓누르는 과거의 무게를 조금 덜어 내고 나 자신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조금 덜어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문득 내 마음 안에 있는 상처 입은 아이가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다독이자 어느새 보채던 아이가 새근새근 잠이 든다.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사랑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사랑이었던 것이다. 내가 좀 더 그 아이에게 너그러워진다면 그 아이는 멈추었던 성장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산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성장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 성장의 목적은 바로 우리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데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하나하나 차근히 배워 나간다. 지나가 버린 것 들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것들을 맞아들이는 법, 서로 사랑하며 감사하는 법, 그리고 인생의 작은 행복을 느끼고 즐기는 법을.

 

 

내가 그를 용서한 진짜 이유 ***

심각한 정신질환에 걸려 몇 년 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환자가 있었다. 피해망상과 환청 등으로 고생하던 그녀는 치료의 한 방법으로 사이코드라마를 자주 했다. 그녀의 드라마는 주로 아버지에 대한 것이었다. 불행히도 그녀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로 어린 딸을 학교에도 보내지 않고 모질게 학대하며 돈벌이를 시켰다. 아무도 보호 해 주지 않는 고통의 시간 속에서 그녀는 병들어 갔고, 그 증상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고 말았다.

그녀의 드라마는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통스러웠다. 모두들 용서 못 할 그녀의 아버지에 대해 분노하고 그녀를 동정했다. 분노와 복수 그리고 애증, 그녀의 드라마는 계속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었다. 사이코드라마를 열 번쯤 했을 때, 우리는 극중에서 그녀의 아버지를 죽이기로 했다. 그녀가 아버지가 죽어 간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는 장면을 설정한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면서 역할을 바꾸어 가며 서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유언을 하게 했다.

아버지가 죽어 간다는 연출가의 말을 듣고 그녀가 보인 반응은 놀라웠다. 갑자기 통곡을 하면서 무대로 뛰어올라가 절규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아버지에게 복수할 것이 많은데, 아직 아버지에게 할 말이 많이 남았는데 벌써 죽으면 어떻게 하냐고요." 나를 비롯한 모든 참여자가 울음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를 미워하고 죽기를 바라며 복수하려 했던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면서 극을 마무리했다. 극이 끝나고 관객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그녀는 놀라운 말을 했다.

"아직 아버지를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용서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에 대한 미움 때문에 나 자신을 파괴하고 나의 현재와 미래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해서라도 아버지를 그만 미워하고 복수하려는 것을 멈추어야겠습니다."

나는 다시 고개가 숙여졌다. , 저렇게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환자도 나보다 낫구나! 그 환자는 자신뿐 아니라 사이 코드라마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치료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감정은 사탕을 더 달라고 보채는 어린아이 같다.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도 감정은 충동적으로 저질러 버린다. 어른으로서는 해서 안 되는 유치한 말과 행동도 감정에 휘말리다 보면 불쑥불쑥 튀어나와 다른 사람들 에게 비수를 꽂기도 한다. 그러고는 곧 후회하고 얼굴을 붉히며 밤을 뒤척이지만 다음 날이면 똑같은 잘못을 또 저지른다. 잘못하고 후회하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다짐하고는 또 잘못을 저지르는 게 바로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이다. 마치 "내가 잘못한다는 것은 내가 존재한다는 뜻이다"라는 말처럼...

그러나 우리는 내가 한 잘못보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한 잘못을 더 예민하게 느끼고 오래 기억한다. 감정은 상당히 자기 중심적이고, 만족을 모르며,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아이는 아직 자아나 현실감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서 좌절이나 심리적 충격을 받았을 때 이해하고 처리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바로 격한 감정 반응을 보이며 상처가 깊고 오래 남는다. 이러한 상처는 어른이 되어서도 크고 작은 흔적을 남긴다. 마치 비 오거나 흐린 날이면 예전의 상처가 욱신거리고 쑤셔 오는 것과 같다.

우리의 감정은 특히 안 좋았던 일에 대한 기억력이 뛰어나다. 살아오면서 경험한 수많은 일들 가운데 행복하고 좋았던 일은 당연한 듯 잊어버리고, 상처나 모욕 받았던 일을 두고두고 기억하면서 마치 30분 전에 일어난 일처럼 분노와 수치심을 느끼며 생생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분노나 화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감정이다. 하지만 심한 분노에 사로잡히면 끝없이 되풀이되는 과거의 기억과 감정 때문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저 손상된 자존심을 회복하고 자신이 받은 상처를 되갚아 주려는 마음이 앞서서 정 말 중요한 것들을 잃게 된다. 분노에 휩싸인 사람에게는 현재와 미래는 없고 오직 상처 입었던 과거만 있을 뿐이다.

"우리 부모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데, 그들이 내게 한 행동의 결과를 꼭 보여 줄 거예요." 자식에 대한 집착이 과도했던 부모에게 자율권을 빼앗기고 상처받았던 한 환자의 말이다. 그는 부모에 대한 분노 때문에 꼭 복수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살았다고 했다. 그가 복수하는 방법은 자신을 망침으로써 부모의 꿈을 좌절시키고 부모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분노가 통제되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뿐 아니라 결국 자신마저 무참하게 파괴해 버린다.

우리는 자존심에 상처 입을 때 분노한다. 또 신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부당한 손상을 입을 때,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 무엇보다도 절실히 원하던 것을 얻지 못했을 때 분노한다. 그렇기에 분노는 어디에나 있다. 삶은 상실과 결핍과 부재를 빼 놓고 얘기할 수 없으며, 누구나 이기적인 면이 있고, 삶은 공평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몇 년 전 나도 어떤 사람에 대한 미움 때문에 한동안 시달린 적이 있었다. 누굴 미워하기 시작하니까 웃음을 잃게 되고 나중에는 식욕마저 떨어지고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서너 시까지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퍼 뜩'이러다 내가 망가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내게 그리 중요한 사람도 아닌데 그에 대한 미움 때문에 나 자신을 파괴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든 것이다. 그랬더니 솥단지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던 내 속이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그 뒤로는 다시 단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나 역시 앞에서 소개한 여자 환자처럼 용서란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용서란 내 마음에서 분노와 미움을 떠나보내는 작업이다. 그래서 내 마음이 다시 고요를 되찾아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며 떠날 수 있게 하는 작업이다. 또 용서란 자신과 상대에 대해 품고 있던 이상을 접고, 현실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작업이다. 즉 상대도 나와 똑같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애정을 쏟아부을 가치가 없는 그에게 몰두했던 내 에너지를 거두어들이는 작업인 셈이다.

이러한 용서는 다른 사람을 향해서만 베푸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소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루게릭병으로 죽어 가던 모리 교수가 제자인 미치에게 남긴 말처럼 말이다.

"우리가 용서해야 할 사람은 타인만이 아니라네, 미치. 우리 자신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해. 여러 가지 이유로 했어야 했는 데 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도 용서해야 하네. 일이 이리저리하게 되지 않았다고 탓할 수만은 없지. 나 같은 상황에 빠지면 그런 태도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되네. 나는 언제나 '연구를 더 많이 했으면 좋았을 텐데'. '책을 더 많이 썼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했네. 그 생각 때문에 나 자신을 질타하곤 했어.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런 질타가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알겠어. 화해하게, 자기 자신과 주위의 모두와…. 자신을 용서하고 그리고 타인을 용서하게. 시간을 끌지 말게. 미치. 누구나 나처럼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야. 누구나 다 이런 행운을 누리는 게 아니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친구들에 대하

정신분석 이론에 따르면 청소년 시기의 친구는 나를 비춰 보는 커다란 스크린 역할을 한다. 친구를 통해 정체성을 다듬고, 자아를 계속 구조화해 나간다. 이런 중요한 시기를 함께 보냈기에 우리는 인생에 대한 가치관과 태도를 형성함에 있어 알게 모르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꿀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가 없다

작가 생텍쥐페리는 친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좋은 벗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통된 그 많은 추억. 함께 겪은 그 많은 괴로운 시간, 그 많은 어긋남, 화해, 마음의 격동….. 우정은 이런 것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래된 친 구가 더욱 좋은 이유다.

사실 이 친구들이 없었다면 나는 병을 못 견뎠을 것 같다. 친구들은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는 내 상태를 늘 염려한다.

나는 친구들에게만은 솔직히 내 병을 이야기한다.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를 지키는 법***

1. 외워 버릴 것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선택한 방법이다. 처음에 나는 시어머니가 듣기 싫은 소리를 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정말 왜 저러시는 거야?' 하며 짜증을 냈다. 시어머니를 이해하 거나 상황을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위해 무진장 애써 보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이해는커녕 자꾸만 화가 나고 시어머니가 너무 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는 절대 바뀌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외우기 시작했다.

시어머니가 듣기 싫은 소리를 해도 '우리 시어머니는 원래 저래' 하고 인정해 버렸던 것이다. 남편과 내가 쓰는 방의 장롱 과 서랍을 자기 방식대로 정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시어머니를 이해하려고 들면 나만 괴롭다. 결국엔 이해가 안되니까 말이다. 대신 그냥 '시어머니는 그런 분이다' 인정해 버리면 나중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게 된다. '또 정리하셨구나'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 때문에 고민하는 환자에게도 똑같은 처방을 내렸다. "어차피 안 고쳐질 텐데 그냥 외워 버리세요." 외 우다 보면 시어머니가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할 텐데, 저런 상황에서는 이런 행동을 보일 텐데 하는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더 나아가 어떤 말을 할지 예측이 가능해진다. 그 경지에 달하면 신기하게도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게 된다. 시어머니가 뭐라고 해도 ", " 하며 은근슬쩍 넘기게 되고, 시어머니가 곧 화를 낼 것 같으면 미리 선수 쳐서 다른 이야기를 꺼내 갈등 상황을 피하게도 되었다. 그러려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갈등 상황에서 '저 사람 왜 저래?'라며 열을 내게 되면 오히려 나를 잃어버리고 그에게 휘둘리게 된다. 그러니 안 고쳐질 사람인데 계속 얼굴을 보고 살아야 한다면 그냥 외워 버리는 게 낫다.

 

2. '~하는 척'이 필요한 때도 있다

사람들은 '~하는 척'을 굉장히 싫어한다. 솔직하지 못하고 가식을 떠는 행위로 생각해서다. 왜냐하면 보통 '~하는 척'은 내 자존심을 누르고 남들에게 맞춰 주거나 인정받고 싶을 때 하게 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나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하는 칙'이 솔직하지 않은 것은 맞다. 그래서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이 내 얘기를 듣는 적만 할 뿐 속으로는 딴생각을 하고 있으면 화가 나고, 힘들어도 괜찮은 척하면 서운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일 때문에 만난 사람들은 애초에 마음을 나누고 서로 친해지기 위해 만난 사이가 아니다. 그런 관계에서는 서로의 이익에 따라 관계 자체가 유동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관계를 원만하게 가져가는 것이 좋다. 그 사람들에게까지 내 속마음을 솔직하게 내보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다. 속으로는 싫어도 그걸 굳이 밖으로 내색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솔직한 게 최고라며 싫다고 말해 봤자 관계만 어그러질 뿐이다. 만약 부모가 아이들이 귀찮을 때마다 그걸 다 표현한다고 생각해 보라. 아이들이 얼마나 상처를 받겠는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할 필요는 있지만 그 감정을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다 표현할 필요는 없다. 그럴 때 유용한 것이 바로 '~하는 척'이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휘둘리는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맞춰 주는 것이다. 상황을 원만하게 풀어 가기 위한, 그래서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다. 그러니 '~하는 척'이 옳지 않으니까 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면 버리는 게 좋다. 때로는 솔직한 게 오히려 남에게 상처를 입히고 관계를 망치는 지름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그가 당신에게 상처를 주고자 해도 당신이 받지 않으면 그만이다

누군가 나를 다짜고짜 비난한다고 해 보자. 그러면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비난받는 것만으로도 모멸감과 수치심에 얼 굴이 화끈거린다. 그러면 부당한 비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모욕을 준 상대에게 주먹이라도 날려야 할까. 아니면 나는 그런 말을 들어도 마땅하다며 도망치는 게 편할까? 로마의 역사가인 타키투스는 비난에 화를 내는 것은 그 비난을 받을 만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므로 주먹을 날리거나 상대에게 똑같이 화를 내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럴 때는 선물을 받았다고 한번 생각해 보라.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을 받았다면 돌려주면 그만이다. 누군가 나를 비난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게 부당하다면 그 비난을 받지 않으면 된다. 아무리 기분 나쁜 일이라도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또 기분 나쁜 일을 당했을 때 우리가 맨 처음 받는 것은 '상처'가 아니라 상처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므로 '느낌'을 상처로 남길지 그냥 상대방에게 돌려주고 머릿속에서 지워 버릴지는 내 선택에 달려 있다. 물론 그는 당신이 그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아 화가 나서 당신에게 상처를 주려고 작정했을 수도 있다. 모멸감을 안겨 주려고 벼르다가 사람들 앞에서 일부러 비난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에 휘둘릴지 아닐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러니 누군가 상처를 주고자 해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않으면 그만이다.

 

4. 더 이상 그가 당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할 것

그가 당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더 이상 고민하지 마라. 자책하지도 마라. 그가 당신을 함부로 대한다고 해서 당신이 못난 존재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딱히 잘못을 한 것도 없는데 그가 당신을 괴롭힌다면 그가 못난 것이다. 그리고 그가 당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만들고 싶다면 그와의 관계를 풀기 위해 너무 애쓰지 말고, 거기에 쓸 에너지를 당신을 업그레이드하는데 썼으면 좋겠다. 기술을 연마하고, 실력을 키우는 데 집중해서 그 사람 위로 올라가 버 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설령 뒷담화를 할지 언정 앞에서 대놓고 당신을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것이다. 게다가 어떤 이유 로든 당신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면 그것이야 말로 당신을 지켜 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

 

 

공부의 즐거움에 대하여***

 

다행히 나는 너무 늦지 않게 다시 배우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부를 하며 나의 세계를 확장하고 나니 공부의 영역도 점점 더 넓어졌다. 책을 보는 것도,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것도, 두 사람이 만나 결혼생활을 하는 것도, 아이를 키우는 것도, 사람들과 원만하게 잘 지내는 것도, 하물며 옷 입는 것과 화장하는 것도 다 공부였다. 세상과 부딪치고 사람과 부딪치며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고, 나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할 줄 알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65년 넘게 살고 보니 산다는 것 자체가 공부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당신도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닌 내면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공부의 즐거움을 느껴 보았으면 한다. 그것이 춤이든, 음악이든, 운동이든, 무엇이든 좋다. 하고 싶어 하는 공부는 호기심의 영역을 점점 넓혀 주고 인생 전반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래서 그저 재미로 인문학 강좌를 듣거나 취미 활동에 열심인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얼굴이 꼭 청소년처럼 해맑지 않던가.

로마의 정치가 카토는 여든의 나이에 그리스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스의 역사가 플루타르코스 역시 여든 살에 라틴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예순을 넘긴 나이에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또 아흔 살의 나이로 생을 마친 미겔란젤로의 자우명은 "나는 아직도 공부한다" 였다고 한다.

죽을 때까지 알고 싶고 성장하고 싶은 게 인간이다. 또 즐기려고만 한다면 공부야말로 기력이 달리고 활동 반경이 좁아지는 노년에도 인생을 재미있고 보람차게 살 수 있는 비결이다. 하지만 이 또한 젊은 시절부터 갈고닦지 않으면 나이 들어 즐기기가 어렵다. 그러니 너무 늦기 전에 호기심을 발동시켜 공부의 세계를 발견해 볼 일이다.

나는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하며 남은 생을 즐기게 될까. 사람의 마음이 궁금한 나는 세상 온 천지가 공부거리니, 공부가 끝날까 봐 걱정할 일은 면해 참으로 다행이다.

 

 

그냥 재미있게 살자고 마음먹었을 뿐이다***

세상은 내가 보고 싶어 하는 만큼 보여 준다는 걸, 그러니까 재미있게 살고자 마음먹은 사람에게 이 세상은 재미투성 이라는 걸.

나이를 먹을수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는게 별로 재미가 없다고 말한다. 웬만한 일은 다 겪어 봤기에 호기심이 안 생긴 다는 것이다. 먹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 하고 싶은 것도 별로 없다면서, 뭐 신나는 일 없냐고 묻는다. 하지만 오금이 저릴 만큼 재미있는 일은 우리 인생에서 그다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대부분은 평범한 일상이 이어질 뿐이다. 그리고 무엇이든 재미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실은 자신감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해 봤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할 거라는 걱정,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무엇이든 시도해 보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그 결과 그들은 어떤 일에도 쉽사리 호기심을 갖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게 걱정하는 동안 우리는 그날 누릴 수 있는 진짜 재미를 놓쳐 버리고 만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퍼센트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고, 30퍼센트는 이미 일어난 일들에 관한 것이며, 22퍼센트는 아주 사소한 걱정들이고. 4퍼센트는 우리가 전혀 손쓸 수 없는 일들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나머지 4퍼센트만이 우리가 정말로 걱정해야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데없는 96퍼센트의 걱정과 불평불만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오늘을 즐겁게 보내지 못하고 만다.

그에 대해 인도의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는 <장자, 도를 말하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삶은 경험이지 이론이 아니다. 삶에는 해석이 필요없다. 삶은 살아야 하고 경험해야 하고 누려야 하는 것이다. (중략) 매 순간 삶이 그대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그대는 머리로 궁리하고 있다. 그대는 삶에게 말한다. '기다려라. 내가 문을 열어 주겠다. 그러나 먼저 결정 내릴 시간을 달라.’ 삶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평생토록 삶이 그냥 왔다가 간다. 그대는 살아 있지도 않고 죽어 있지도 않은 채 다만 고달프게 질질 끌려갈 뿐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생각만으로 지쳐 버리는 삶에서 벗어나면 어떨까. 오쇼의 말처럼 삶은 그냥 살아야 하고 경험해야 하고 누려야 하는 것이다.

2년간 인적이 드문 숲에서 홀로 생활하며 (월든)을 쓴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한 사람이 평생 탐구하고 즐길 수 있는 영역은 결코 반경 10마일( 16킬로미터)을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즐기려고 마음먹은 사람의 눈에는 새롭고, 신기하고, 감탄할 만한 일들이 수없이 발견된다는 뜻일 게다. 이는 마치 연애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연애를 막 시작할 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참 많은 것을 물어본다. 그에 대해 궁금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상대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상대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그에 대해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촉각을 곤두세우다 보니 상대의 머리 스타일이 조금만 바뀌어도 귀신같이 알아채고 "예쁘다", "멋있다"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것들을 알려 주려고 애쓰게 된다. 그러면 서로 기분이 좋아지고 더욱 섬세해지고 더욱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재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면, 감탄하고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면, 세상엔 즐거운 일투성이며 인생은 더욱 신나고 재미있어 진다.

삶이 힘들고 어렵고 좀체 나아질 것 같지 않아 보여도, 어느 때나 즐길 거리는 분명히 있다. 그리고 즐길 거리가 다양한 사람일수록 불가피한 불운과 불행 또한 잘 버 수 있다. 2차 세계 대전 중 유대인 수용소에 포로로 잡혀가 매일 수백 명의 유대인들이 소리 없이 불태워지는 광경을 목격해야만 했던, 그리고 정작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몰랐던 빅터 프랭클. 그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그 경험을 토대로 '로고테라피'를 창시했는데 수용소에서의 하루를 다음과 같이 남겼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죽도록 피곤한 몸으로 막사 바닥에 앉아서 수프 그릇을 들고 있는 우리에게 동료 한 사람이 달려왔다. 그리고는 점호장으로 가서 해가 지는 멋진 풍경을 보라는 것이었다. 밖에 나가서 우리는 서쪽에 빛나고 있는 구름과. 짙은 청색에서 핏빛으로 끊임없이 색과 모양이 변하는 구름으로 살아 숨 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진흙 바닥에 패인 웅덩이에 비친 하늘의 빛나는 풍경이 잿빛으로 지어진 우리의 초라한 임시 막사와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고 있 었다. 감동으로 인해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수용소에서조차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듯, 어느 때고 감탄할 만한 일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사는 게 너무 재미없다는 당신에게 삶과의 연애를 권한다. 삶과 연애해 보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모두 뻔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을 멈추고 그냥 삶을 살아 보면, 연애하는 마음으로 기대와 설렘을 가진다면, 세상은 당신이 미처 생각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또한 당신이 그 세상을 보고 감탄한다면 무 의미한 오늘이 신나고 재미있는 하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브라보!"라는 감탄사 하나로도 연주 분위기가 바뀌고 연주를 구경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는 게 인생이니까 말이다.

 

챕터4 마흔 살에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들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태도

친구가 마흔 살 때 겪은 일이다. 누군가 자신에게 "올해 몇 살이세요?”라고 물었는데 이상하게 선뜻 '마흔'이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서른아홉까지만 해도 아직 30대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안하며 살았는데 왠지 마흔이라고 하면 한 살 차이밖에 안 나지만 너무 나이 든 느낌이 난다는 이유였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흔 살에 나는 어땠나 돌아보니 별 감흥이 없었던 것 같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고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지만 그려러니 했던 것이다. 아니,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몸의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지만 별일 아니라며 애써 무시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마흔 살들은 고민이 많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 마흔이 된다는 건 인생의 절반을 살았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평균 수명이 길어지다 보니 100세를 놓고 보면 마흔 살이 되어도 아직 살아야 할 날이 60년이 나 남아 있다. 그러니까 뭘 새로 시작하려니 늦은 것 같고, 그렇다고 안 하려니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은 나이, 그것이 바로 마흔인 것이다.

게다가 자신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마음속에는 젊은 시절의 열정이 그대로 살아 있고 앞으로도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이 자꾸만 아니라는 신호를 건넨다. 흰머리와 잔주름, 떨어진 체력, 노안 등등이 마흔의 나를 한꺼번에 덮 쳐 오는 것이다.

아무리 젊음은 마음에 달렸다고 자기 최면을 걸어 봐도 소용없다. 이제는 예전과 똑같이 술을 마시면 다음 날까지 숙취 로 고생한다. 또 옛날에는 하루에 몇 잔씩 즐기던 커피도 이제는 저녁에 한 잔만 마셔도 잠이 안 오고, 자기 전에 먹은 음 식이 더부룩해 밤새 잠자리에서 뒤척이게 만든다.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게 되면서 조금만 몸에 이상이 와도 더럭 겁 이 나서 병원을 찾게 되고, 장롱 안의 보험증서를 꺼내 보게 된다. 몸이 아프고,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걸 보며 어느 순간 나이가 들었음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흔은 슬프다. 왜냐하면 날마다 조금씩 젊은 시절의 나를 잃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 든다는 것은 내가 소유했다고 생각했던 것들, 내 곁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떠나보낼 때가 되었 음을 알아 가는 과정이다. 이제는 날씬했던 허리와 정열, 모험심, 시력 등이 사라져 가는 것을 그냥 바라봐야만 한다. 젊은 시절 품었던 세계 곳곳을 여행하겠다던 꿈도, 이 세상의 모든 책을 읽어 보겠다던 꿈도 나의 한계에 부딪혀 맥없이 주저앉아 버린다.

 

그러다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는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뭔가 모를 두려움이 안개처럼 깔리고, 이제 더 이상 안전하 거나 보장된 그 무엇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중심이 흔들리고 주위의 많은 것들이 흩어져 사라지는 느낌에 문득 소스라치게 된다. 사업을 하다 망한 친구, 불륜에 휩싸이거나 이혼한 친구,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친구도 하나둘씩 생긴다.

게다가 중년기에 접어들면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부모의 부모가 되어야 하는 운명에 맞닥뜨리게 된다. 아이들은 우리의 품을 떠나 자신들의 삶을 개척하면서 우리를 뒤에 남겨 놓는다. 그전까지는 집안의 우두머리였던 우리에게 아무도 "엄마, 아빠에게 물어봐야지" 하며 쪼르르 달려오지 않는다. 말 그대로 집안은 텅 비어 버린다.

그런데 그 사이 전에는 강하고 무섭게 보이던 부모님이 늙고 쇠약해진 모습으로 이제 우리에게 경제적, 심리적으로 의지해 온다. 그러면 우리는 부모로부터 독립해 삶을 꾸려 가고 있다가도 어느새 다시금 부모의 생활 속으로 잡혀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심지어 늙고 쇠약해진 부모를 돌보면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억압되어 있던 감정들을 보게 된다. 예전에 부모에 대해 느꼈던 짜증과 원망, 슬픔과 죄책감이 부모에 대한 사랑을 뛰어넘어 다시금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분석가인 융은 마흔이 되면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고 했다. 삶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혼란을 겪는 것이 다. 왜 그럴까?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의 저자 제임스 홀리스에 따르면 우리는 1차 성인기인 12~40세까 지 누구의 아들딸, 누구의 엄마 아빠, 어느 회사의 팀장으로서 가족과 사회 안에서 사회화된다. 그것은 진정한 본성에 따르기보다는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하고 선택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키워진 결과로서의 삶에 가깝다. 즉 진정한 자신에게 서 멀어진 채 살아온 것이다.

그러다 마흔이 되면 우리가 보낸 시간들이 오롯이 기록된 과거의 책장을 넘기며, 이제껏 열심히 일궈 온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 해도, 내가 누구이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단 한 번뿐인 인 생에서 내가 성취한 게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몰려온다. 아직도 원하는 것이 많은데,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시간은 계속 흐르고 우리에게 남은 선택의 폭은 점점 줄어만 가기 때문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과 젊은 날들 은 가 버렸고,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애도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이처럼 중년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삶을 재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과 맡아 온 역할 들을 빼고 나면 나는 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 봄으로써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 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듦으로 인한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들은 중년이라는 나이가 싣고 가 버린 많은 것들과 인생은 유한하며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한꺼번에 직면하면서 온 힘을 다해 다가오는 세월과 맞서 싸우려 든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구두 뒤축을 땅에 깊숙이 박고 꼿꼿이 서서 모든 변화에 저항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다시 젊어지려고 애쓰기도 한다. 나이 듦을 부정하기 위해 더 분주히 움직이며 새로운 계획에 몰두하는 경우도 종종있다.

이처럼 변화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시간이란 현실도 부정하려 든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신의 말에 순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젊은 직장 동료들에게 분수를 지키라고 충고한다. 폭풍우 속에 서 휘어지지 않는 참나무처럼 말이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건강이나 결혼 생활 혹은 직장에서 작은 변화라도 생기면 부러지고 만다.

젊음을 다시 찾으려는 사람들은 과거로 되돌아가려 한다. 그래서 예전에 가졌던 것, 좋아했던 것들을 다시 한번 갖고자 한다. 그들은 오랜 시간을 같이 살아온 배우자에게 등을 돌리고 젊고 새로운 상대를 찾아 헤매거나, 일시적으로 타오르는 불같은 연애에 몰입하기도 한다. 혹은 성형외과에 가서 보톡스 주사로 주름을 펴기도 한다. 그들은 주름을 펴서 젊어 보이는 얼굴을 얻는 대신 표정을 잃어버린다.

이처럼 나이가 들면서 내적 성숙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는 과거에 이루지 못한 것을 다시 시작하느라 분주한 사람들은 적극적이고 활력 있는 삶을 산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이것이 지나칠 경우 치러야 할 대가가 커질 수밖에 없다. 늙어 가는 자신을 부정하느라 자신을 소진시켜 버리는 아이러니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나이 듦으로 인한 상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다. 그러나 다시 찾을 수 없는 것에 매달리다 보면 결국 더 많 은 것을 잃게 될 뿐이다. 내가 의미 있게 써야 할 시간, 내가 더 사랑해야 할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까지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

우리나라 무용 치료의 선구자인 류분순 교수는 한국임상예술학회에서 만났는데 벌써 만난 지 32년이 흘렀다. 네 살 차이를 넘어서 인생의 친구가 되어 서로 참 많은 것들을 나누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좋다. 그런 류 교수와 내가 만나 오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서로 쉬라는 이야기였다.

"좀 쉬어 가면서 하세요."

"그러는 교수님도 좀 쉬세요.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요.

그렇게 둘 다 바쁘게 살았건만 나는 병에 걸리고 그녀는 건강하다. 아마도 그녀는 춤을 추었고 나는 춤을 추지 않았기 때문일 게다. 이 이야기는 내가 국제 무용 치료 학회에서 발표 중에 농담조로 한 이야기다. 그러나 농담 속에 진담이 있다고,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일만 하는 것과 춤추면서 일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휴식과 놀이는 우리의 삶에 정말 중요한 비타민 같은 요소다.

그런데 나는 의사와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오면서 파킨슨병으로 병원을 그만두기까지 30여 년 동안 제대로 쉬어 본 적 이 없다. 남들에게는 건강과 휴식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해 왔지만 정작 나는 늘 너무 바빴고 시간은 부족했다. 그래서 돌봄이 필요한 몸을 노예 부리듯 혹사했다. 일하느라 밥을 거르기 일쑤였고 때로는 잠까지 줄였다. 몸을 마치 뇌를 쓰고 활동하기 위한 도구처럼 여겼던 것이다. 그렇게 쉬지 않고 계속 무리하면서도 나는 끄떡없을 거라 자신했다. 그래서 몸이 상하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1999년 밥을 조금밖에 못 먹고, 글씨를 쓰는데 자꾸만 글씨가 작아지고, 저녁이면 오른쪽 다리를 끌게 되고, 사람들과 말을 하기가 싫고, 불안 증상까지 찾아왔는데도 피곤해서 그럴 거라고, 좀 쉬고 운동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운동을 시작한 것도, 쉰 것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늘 그런 식으로 내 몸을 혹사했고 결국 파킨슨병 진단을 받게 되었다.

나는 왜 말로는 쉬어야 한다면서도 몸을 혹사했던 걸까? 돌이켜 보면 나는 그 어떤 일이든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직장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없으면 일이 잘 안 돌아가거나 잘못될 거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도맡아 하곤 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것을 여기저기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는 증거라고 생각해 좋아하기까지 했다.

그래서일까. 과거의 나처럼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들을 볼 때면 왠지 더 안타깝다. 몸도 기계처럼 과하게 쓰면 고장이 나니까 몸을 아껴 쓰라고 해 봐야 그들은 말을 흘려 들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워커홀릭인 남편은 내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는 걸 보고 적어도 겁이 났는지 내 앞에서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휴가 계획 세워 볼게"라고 하지 않는다.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으므로 그런 식이면 절대 휴식을 취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본인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일하는데 길들여진 사람들은 삶에서 쉴 시간을 먼저 만들어 두어야 한다. 일을 하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무조건 휴식을 취하겠다고 작정을 하고 그에 맞는 계획을 미리 세워 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내가 1년 계획을 세울 때 휴가 계획 먼저 세우라고 하자 남편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반문했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함부로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 없어도 병원 잘 돌아간다니까요."

현대인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없다. 끊임없이 뭔가를 한다. 남들보다 더 빨리 가지는 못해도 뒤처지기는 싫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인터넷 뉴스를 보고, 버스나 지하철에 앉아서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거나 듣는다. 그야말로 쉴 새 없이 정보들을 접하는 것이다. 그처럼 잠들기 직전까지 계속되는 자극으로 인해 뇌는 어느 순간 과부하에 걸려 두통을 호소한다. 뇌가 더 이상 자극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멍 때릴'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불안함에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못 견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밥을 먹으면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듯 뇌도 쉴 시간이 필요하다. 여태까지 들어온 자극이나 머릿속에 쌓인 정보 들이 소화될 시간이 있어야 한다. 뇌는 쉬는 시간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자극과 정보들을 내적으로 재배열하고 통합해 어떤 건 걸러내고 어떤 건 의미를 두는 등 사고를 형성한다. 그런데 뇌가 쉬지 못하면 끊임없는 자극에 반응하느라 지쳐 버린다. 그러므로 어떤 답이 계속해서 떠오르지 않을 때는 그냥 그 문제를 잊어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뇌가 그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들을 통합할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를 보고 영화 평을 쓸 때 꼭 두 번을 본다. 한 번은 아무 생각 없이 보고 느낀다. 뭔가 말할 내용이 있다 싶으면 한 번 더 보는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잘 안 써질 때가 있다. 그런데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 지나면 어느 순간 '맞아. 그렇게 쓰면 되겠다' 하고 글 쓸 방향이 떠오른다. 나의 경험과 지식과 영화의 내용이 섞이고 통합되면서 주제와 방향이 잡히는 것이다. 만약 일주일 정도 문제를 잊고 뇌에게 그냥 쉴 시간을 주지 않았다면 나는 결국 영화 평을 제대로 쓰지 못했을 것이다.

몸도 뇌도 때론 쉬어야 한다. 쉬지 않으면 시야가 좁아져 평소에 할 수 있는 적절히 확장된 수준의 사고를 하기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잠시 멈추어 선 시간에 우리는 그동안 경험한 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더 잘 이해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더 자신 있게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힘차게 나갈 수 있다. 그러니 몸은 피곤한데도 계속 쉬지 못하고 있다면 의도적으로 '잠시 멈춤'을 스스로에게 허락해 보라. 잠시 멈추는 시간을 가지면 가질 수록 불안함은 줄어들고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요즘 몸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며 몸을 피로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다. 예 전에는 몸이 피로해도 정신만 괜찮으면 잠을 조금만 자면서 버텼다. 하지만 요즘엔 몸이 피로하고 힘들면 일단 쉰다. 쉬면서 하늘을 쳐다보고 바람도 느끼고 가볍게 산책을 가기도 한다. 운동도 열심히 한다. 하루에 한 시간씩은 운동할 시간을 비워 놓는 것이다. 그러면 해야 할 일들 가운데 못 하게 되는 일들이 생기는데 그래도 괜찮다. 다른 사람이 나 대신 잡지에 들어갈 원고를 쓸 테고, 다른 사람이 나 대신 강의를 할 것이다. 꼭 내가 안 해도 되는 것들이다. 그걸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아직까지 후회는 없다. 그리고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오히려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나에게 멍 때릴 자유를 굉장히 많이 허락할 작정이다.

 

나는 남편을 모르고, 남편은 나를 모른다는 사실 ***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문정희 시인이 쓴 '남편'이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문득 이 시를 읽으니 남편과 내가 결혼한 지도 벌써 40년이 넘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남편은 정말이지 나와 함께 밥을 가장 많이 먹은 사람이자 나에게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사람이다. 밥을 그렇게나 오랜 세월 같이 먹었는데도 왜 우리는 그렇게 싸우고 또 싸웠던 걸까?

부부관계의 가장 큰 비극은 서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애할 때는 어떤 커피를 가장 좋아하는지, 어떤 옷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어떤 곳을 싫어하는지, 어떤 영화를 싫어하는지 시시콜콜 묻는다. 매일같이 만나는데도 무슨 할 얘기가 그리 많은지 "밥은 먹었어? 누구랑? 뭐 먹었어? 맛있었어?" 속속들이 묻고 답하느라 휴대폰 배터리가 금세 닳는다.

그러나 결혼하고 1년만 지나도 언제 그랬냐는 듯 더 이상 서로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남편이 나를 아는 줄 알았다. 웬만한 일에는 일희일비하지 않지만 한편으로 내게도 여린 소녀 같은 면이 있다는 것을, 이성적이고 차분한 편이지만 실은 내가 굉장히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남편이 당연히 아는 줄 알았다. 그만큼 오랜 세월을 같이 살아왔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남편은 나를 몰랐다. 내 가슴속에 시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내색을 잘 안 했을 뿐 결혼하고 워킹맘으로 살면서 많이 힘들어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남편은 그냥 내가 원래부터 통이 크고 대범한 여자인 줄 알고 살았단다.

생각해 보면 내 잘못도 크다. 시부모님에 시동생까지 같이 살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나는 너무 괜찮은 척했다. 무엇보다 나는 남편이 설마 내가 힘들어하는 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알면서도 모른 척하면 서 나를 도와주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 남편을 원망했을 따름이다. 그런데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내 눈에는 남편이 지독한 워커홀릭으로 성공을 위해 가족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남편도 외롭고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둘 다 생활에 쫓기면서 너무 지쳐 집에 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단 쉬고 싶어 했고 상대방이 그 마음을 백분 이해해 주리라 생각했다. 더 이상 서로를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 대로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고 그것은 점점 서로에게 상처가 되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왜냐하면 내가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하면서 환자들의 이야기를 잘 들 어 주는 사람이니 으레 집에서도 그럴 거라고 생각 했단다. 부끄럽지만 딴 사람 얘기는 다 들어 주는데 남편만큼은 내 이야기를 먼저 들어 줬으면 했다.

그런데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단다. 남편도 밖에서는 잘 들어주는 사람이지만 집에서는 내가 먼저 자신의 말을 잘 들어 주기를 바랐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볼 때 우리는 서로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대신 일방적으로 상대방이 자신을 이해 해 주기를 바란 셈이다.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결혼한 지 2주 된 부부, 2개월 된 부부, 2년 된 부부, 20년 된 부부를 대상으로 서로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테스트했다. 그 결과 서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커플은 결혼한 지 20년 된 부부가 아니라 2주 된 부부였다. 왜냐하면 2주 된 부부는 '내 남편 오늘은 직장에서 뭐 하나?, 내 아내는 오늘 뭘 했을까?' 궁금해하고 끊임없이 관심을 갖는다. 관심은 질문으로 이어지고 그에 답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조금 더 알아 가는 것이다. 하지만 20년 된 부부는 서로에 대해 문지 않는다. '거 봐, 저 사람 저럴 줄 알았다니까, '저 여편네 또 잔소리하네'라고 생각하며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정작 서로에 대해 모를 수밖에.

사람은 안 변한다지만 나이를 먹고 세월이 쌓이면서 변하는 부분이 분명 있다.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고, 사람을 보는 눈 이 달라지고, 세상을 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아무리 안 변했다 치더라도 입맛은 변하기 마련이며, 시력도 변하고 뱃살도 나오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다.

그러니 5년 전 남편과 지금의 남편이 같을 수가 없고, 10년 전 아내와 지금의 아내는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나와 남편처럼 그동안 서로에게 쌓인 상처 때문에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까지도 어느 순간 멈춰 버리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남편의 이야기를 그냥 듣기만 했다. 그러기를 몇 번, 어느 순간 남편은 이렇게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놀라운 건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이 나의 일상을 물어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밥은 뭐 먹었어? 오늘은 어땠어? 괜찮아?"

그 후 남편과 나는 다시 서로를 알아 가는 재미에 빠졌다. 그 사이 변했지만 몰랐던 것들에서부터 오늘 하루 있었던 이 야기 그리고 그동안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어릴 적 상처까지, 쌓인 이야기는 많았고 서로에게 하고픈 이야기도 많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알게 되었다. '사랑하니까 저 사람은 분명 내가 얘기 안 해도 알 거야'라는 생각은 틀렸다는 것을.

아무리 사랑해도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그러니 상대방에게 나에 대해 자꾸 알려 주어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을 차곡차곡 가슴에 쌓아 두는 대신 그 말을 밖으로 꺼내야 한다. 어제와 다른 나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이 나에 대해 알게 된다. 그리고 절대 상대방을 다 안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나 자신도 다 모른다. 그런데 상대방을 어찌 다 알겠는가. 나는 그 사실을 결혼하고 30년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지만 당신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상대방에게 끊 임없이 나를 알려 주고, 상대방을 끊임없이 알려고 노력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결혼 생활을 오래도록 유지하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한 후배가 나에게 주례를 부탁했기 때문인데, 이 글을 주례사 대신으로 전한다.

 

 

좋은 부모가 되려고 너무 애쓰지 말 것

'어머니, 아버지

가만 불러만 봐도 따뜻해지고 그리워지는 이름이다. 내가 걸어가다 넘어지면 바로 일으켜 주고, 세상의 좋은 것들은 다 나에게 주고 싶어 하고, 나를 위해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언제나 나를 최고라고 말해 주고, 억울한 일이 생기면 나를 대신해서 싸워 주는 세상 든든한 이름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렇게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이상화하고 그리워하면서 성장한다. 그러나 현실의 부모는 그리 완벽하지 않으며 내가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주지 않을 때도 많다. 부모님이 너무 바빠서 삼시 세끼 내가 알아서 챙겨 먹어야 할 때도 있고, 부모님이 서로 얘기를 하다가 언성이 높아지면 이러다 큰 싸움이 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다른 집은 모두 화목 하고 단란해 보이는데 콩가루 같은 우리 집이 창피하고, 이럴 거면 왜 나를 낳았는지 부모님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나 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나를 낳고 나서 6개월간 아팠다. 그러다 보니 나를 제대로 돌봐 줄 사람이 없었다. 나는 엄마의 정이 그리웠는지 늦게까지 손가락을 빨고 자주 오줌을 쌌다. 여섯 살 때쯤엔가는 한겨울에 또 오줌을 싸고 말았다. 화가 난 아버지는 나를 얇은 내복 바람으로 쫓아냈다.

그때 나는 옷 속을 파고드는 추위와 수치심에 떨며 울면서 두 주먹을 쥐고 결심했더랬다. 이다음에 크면 꼭 복수하고 말겠다고, 이럴 거면 왜 나를 낳았을까 하는 분노가 치밀었던 것이다. 그런데 커서 생각해 보니 당시 아버지는 소송에 휘말려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고, 어머니는 몸이 아픈 데다가 딸 둘을 낳고 이번엔 아들인가 했는데 또 딸을 낳아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던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태어났을 때 사랑을 받지 못한 건 내 탓이 아니라 그저 운이 없었던 탓이었다. 게다가 아버지와 어머니는 젊고 서툰 부모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가 되어 보지 않고서는 부모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사랑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모를 원망하거나 내가 부모가 되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한다. 상상 속의 완벽한 부모가 되기를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부모가 될 준비를 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다. 한 후배는 나에게 이렇게 말 한 적이 있다.

"솔직히 자신 없어요. 부모님한테 사랑받은 기억이 없어서 어떻게 사랑을 줘야 할지 모르겠고, 아이가 원하는 건 다 주고 싶은데 그렇게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제가 과연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 사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김현승의 시 '아버지의 마음'에 나타나 있는 아버지의 모습처럼 고달픈 일일지도 모른다.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자신을 희생해야 하며, 모든 아버지는 아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속에 항상 이러한 위대한 사랑의 감정만 있는 것일까? 사실 남녀 사이의 사랑처럼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역시 사랑과 미움이라는 양면성을 가진다. 정신분석가인 위니코트는 어머니가 아무리 아이를 사랑한다 해도 이 사랑에는 미움이라는 감정이 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나열했다.

 

- 아이는 엄마의 사생활을 방해한다.

- 아이는 무자비하며, 엄마를 마치 무보수의 하녀나 노예, 하층민처럼 취급한다.

- 아이는 대부분 배고프거나 뭔가가 필요할 때 엄마를 무지 사랑한다. 그리고 일단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면 귤껍질처럼 엄마를 던져 버린다.

- 아이는 엄마를 의심하고, 엄마가 주는 음식을 뱉어 버려 엄마로 하여금 스스로에게 회의감이 들게 한다. 그러다가 이모나 다른 사람이 주는 음식은 잘 받아먹는다.

- 아침에 한바탕 끔찍한 난리를 친 뒤 밖으로 안고 나가면, 아이는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웃는다. 그러면 그는 참 예쁘고 착한 아기네요"라며 아기를 쓰다듬어 준다.

- 만일 처음에 아이의 비위를 잘 맞춰 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엄마를 두고두고 원망한다.

 

위니코트의 말처럼 아무리 어머니라도 아이가 미워질 때가 있다. 위의 경우처럼 구는 아이가 얄밉지 않다면 그건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하지만 부모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아이를 귀찮아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발견하면 불안해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이 비열한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워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아무리 성숙한 인간이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부모 자식의 관계 역시 완벽 할 리 없다. 그러므로 아이가 미워질 때는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항상 옳은 일만 할 수 있는 부모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때때로 우리는 잘못을 하기도 한다. 그 말은 어머니나 아버지도 때로 틀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항상 틀리기 쉬운 인간에 의해 길러지는 존재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여유와 배려, 감사와 유머가 싹튼다.

좋은 부모란 아이의 필요를 언제 어디서나 항상 충족시켜 주는 부모가 아니다. 사람이 성장하려면 어느 정도의 결핍과 좌절을 경험해야 한다. 결핍되고 상실한 것을 스스로 찾아 메우려는 노력이 바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이다. 부모가 모든 것을 다 충족시켜 주면 아이는 성장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부모가 아이에게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좌절을 주면 아이는 서서히 좌절을 견디는 법을 배워 나가고, 현실감을 얻게 되며, 스스로 필요한 것을 찾아 가는 법을 배우게 된 다. 그러면서 한 사람의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한편 부모가 아무리 아이에게 모든 인생을 바쳤어도, 그 결과가 전적으로 부모의 통제 안에 있을 수는 없다. 집 밖의 세 계에서 부모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 아이에게 일어날 수도 있다. 그리고 아이가 어떤 기질을 가졌느냐에 따라 그리고 생후 초기에 엄마와 아기가 얼마나 서로 잘 맞았는지에 따라 아이가 겪게 되는 일들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부모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줄 수 있는 만큼의 사랑과,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부모의 곁을 떠나갈 때 잘 떠나보내는 것이다. 그러니 좋은 부모가 되려고 너무 애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상적인 부모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법이니까.

 

 

때론 버티는 것이 답이다

괴롭힘을 당하던 1년은 너무도 힘들었다. 그런데 훗날 돌이켜 보니 거기서 배운 점도 많다는 걸 깨달았다. 그전에 나는 이유 없이 미움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레지던트를 끝마칠 때쯤 내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대학 졸업 성적도 매우 좋았고 사이코드라마로 학계의 인정도 받았으니까. 그런데 상사와의 갈등은 조직에 들어가 일한다는 것이 나 혼자 잘났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님을 알려 주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굉장히 중요하며 무슨 일을 하든 나를 낮추고 조직 에 맞춰 가는 적응력도 꼭 필요한 능력임을 깨달았다. 아마 그가 없었다면 나는 내가 대단히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라며 기 고만장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뒤로도 나에게는 버터야 하는 날들이 찾아왔다. 무엇보다 결혼을 깨 버리고 싶은 순간 들을 버터 내야 했고, 마흔이 넘어서는 파킨슨병으로부터 버터 내야만 했다.

그런데 버틴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그것이 굴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왜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들 말한다. 하지만 버틴다는 것은 그저 말없이 순종만 하는 수동적인 상태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에 누워서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게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버틴다는 것은 내적으로는 들끓어 오르는 분노나 모멸감, 부당함 등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하고, 외부에서 주어진 기대 행동에 나를 맞추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하는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힘든 과정이다. 그래서 버틴다는 것은 기다림이라 할 수 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참아 내는 것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오늘 부단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내가 수험생 시절을 인내하지 않았다면 의사가 되기 위한 첫걸음인 의과대학에 가지 못했을 테고, 첫 직장에서 견뎌 내지 못했다면 정신분석을 공부할 생각을 못 했을 테고, 결혼을 깨 버렸다면 지금의 가족을 얻지 못했을 테고, 병으로부터 버티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책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버티면서 삶의 한가운데로 나아갈 수 있었고,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은 너무나 애통한 일이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니며 내가 죽어 버려야 했을 만큼 무가치한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 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누군가에겐 따로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등을 배웠다. 만약 버티지 않고 어느 순간 포기해 버렸다면 삶이 쉬웠을지는 모르겠지만 참 많이 후회했을 것이다.

사실 정신 치료 중에도 버팀의 태도는 대우 중요하다. 많은 환자들은 끝없이 치료자를 테스트하며 그녀들의 분노나 절망을 치료자에게 투사한다. 이를 견뎌 내는 것은 치료자에게 있어 매우 힘든 일이다. 자칫 치료자가 자신의 역전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치료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므로 치료자는 환자의 분노를 견디고 그로부터 살아남아야 한다. 일단은 살아남아야 환자를 도울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어떤 것을 이루는 과정에는 견디고 버텨야 하는 시기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버티는 시간 동안 우리는 그 일의 의미와 절박성을 깨닫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필요한 것들을 재정비하며 결국은 살아남는 법을 익히게 된다. 그러므로 버티어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폄하할 수 없는, 피땀 어린 노력의 결실이다.

 그래서 정말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오느냐고, 언제까지 이렇게 버려야 하느냐고 울부짖는 사람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버티는 것이 답답하고 힘들겠지만 버티다 보면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고. 그러니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치지 말라고 말이다. 정말로 때론 버티는 것 자체가 답일 때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 좋은 날은 반드시 온다. 그래서 나도 오늘 하루 잘 버려 내려고 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해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

그러면 가깝다는 이유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게 된다. 가까운 만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지만 무심코 휘두른 손이 상대를 할퀴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관계가 틀어져 마음이 상하면 우리는 으레 상대방에게 그 책임을 돌린다. 최선을 다한 나에 비해 상대방은 별로 애쓴 게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쌓여 있던 불만이 폭발하여 상대방에게 너 때문이야"라는 비난을 퍼붓기에 이른다.

남 탓, 내 탓을 하며 싸우지 않을 방법은 없는 걸까? 결국 관계를 끊어 버리지 않는 한 고통스러운 관계를 견디는 것밖어 답이 없는 걸까? 아니다. 방법이 있다. 서로 너무 큰 상처를 입혀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일정한 심리적 거리 를 두면 된다.

거리를 두는 것은 아예 상대방에 대한 마음을 닫아 버리고 그가 무엇을 하든 개의치 않는 것이 아니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슬프지만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가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거나 비판하 지 않고 고치려고 들지 않는 것이다. 즉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하지 않고 그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다. 베이징 사범대학 교수 위단이 쓴 (논어심득>에는 이런 말이 있다.

"꽃은 활짝 피고 나면 시들 일만 남게 되고, 달은 꽉 차게 되면 기울 일밖에 남지 않는다. 활짝 피기 전이나 꽉 차기 전에는 그래도 마음속에 기대와 동경이 있는 법이다. 친구나 가족의 관계도 모두 이와 같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만 확 트인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가까워진다는 것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게 아니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두 사람이 친밀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상대가 나와 다른 사람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으면서 서서히 자신을 열고 상대를 이해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친밀함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고, 이를 지속하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흔히 가까운 사이가 되면 "우리 사이에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해?" 하며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는데, 가까울수록 더 신 경 쓰고 아껴야 한다. 상대가 모든 걸 받아 줄 거라고 기대하지 말고, 상대의 약점을 건드리지 말고, 자존심을 할 수 있는 말은 피하며, 신뢰를 지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가족은 눈물로 걷는 인생의 길목에서 가장 오래 가장 멀리까지 배웅해 주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꼭 가족이 아니어도 언제든 나를 믿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는 불안하고 두려운 인생도 묵묵히 걸어갈 힘을 얻는다. 그런 점에서 친밀함이란, 외로운 이 행성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그러니 그것을 방치하지 말고 꾸준히 물을 주고 가꾸어 나가야 한다. 그 꽃이야말로 우리의 보잘것없는 인생을 의미 있고 가치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사람을 너무 믿지 마라, 그러나 끝까지 믿어야 할 것도 사람이다

단지 피부색이나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수백만 명을 아무렇지 않게 학살하는 동물, 비행기를 몰고 도시 한복판의 빌딩으로 돌진하여 하루아침에 수천 명의 사망자를 내는 동물, 층간 소음 문제로 살인까지 저지르는 동물. 유산과 보험금을 타기 위해 친구나 가족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는 동물, 제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남의 것을 탐내는 탐욕스러운 동물, 남들이 고통스러워하든 말든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동물, 높은 지능을 남들을 속이고 파괴하는 데 사용 하는 동물... 바로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인간의 모습이다.

살아갈수록 인간의 어두운 면을 마주할 기회가 늘어나면서 중년의 나이에 이르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바로 사람이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처럼 무섭게 돌변할 수 있는 이웃으로부터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항상 경계를 늦추어선 안 된다. 집과 집 사이의 담을 점점 더 높게 쌓아 올리고 창문을 굳게 닫은 채 도시 안의 외로운 섬 같은 생활을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 럼에도 안심이 안 되는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세상은 위험하고 무서운 일로 가득 차 있으니 사람을 쉽게 믿으면 안 된다고 주의시킨다.

그러면 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당신이 만약 사람을 믿지 않고 의심하면 배신당할 일은 분명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매일 누군가를 경계하고 의심하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사람을 믿지 못하면 고립되고 외로워질 것이다.

그런데 사람을 믿으면 세상은 살 만한 곳이 된다. 남에게 속을지언정 불안에 떨며 지내지는 않아도 된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도 사람을 믿으면 안 된다고 답했다. 속는 것보다 날마다 모든 이를 의심하며 불안에 떠는 게 차라리 낫다는 것이다.

"그러는 선생님은 사람을 믿으세요?"

나는 사람을 믿는다. 사람을 믿으면 일단 내 마음이 편하다. 의심하느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물론 그러다 배신당하면 크게 상처받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몇 번 있기도 했다. 하지만 상처가 두려워 사람을 믿지 않으면 행복도 없어져 버린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때문에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예를 들어 여행할 때 로마에 가면 좀도둑이 많으니까 가방을 도둑맞지 않고 싶으면 늘 조심하라고들 한다. 그런데 길거리를 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혹시 도둑이 아닐까, 내 지갑을 훔쳐가지는 않을까 의심한다고 해 보자. 그러면 지갑은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여행을 즐길 수가 없게 된다. 그렇게 지킨 지갑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행의 맛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그렇다고 무작정 모든 사람을 믿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 믿느냐 하는 범위의 문제이며 믿을 수 없는 사람을 가려낼 수 있는 안목도 키워야 한다. 그러나 속이려 마음만 먹으면 쉽게 속아 넘어가는 게 사람이다. 더구나 사람은 흔들릴 수 있는 존재다. 무엇에든 유혹될 수 있고 욕망에 휩싸여 사리분별을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니 100퍼센트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의 치닫기 쉬운 내적 욕망이나 갈등으로부터 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일종의 장치를 해 둘 필요가 있다. 바로 관계에서의 한계 설정이 그것이다.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 한계를 미리 설정해 두는 편이다. 관계를 맺게 되면 그 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함부로 넘어서는 안 될 적정선을 만들고 지키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친구 사이에 돈 거래를 하지 않는다. 친구가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받지 않을 생각으로 줄 수 있는 만큼을 줘 버린다. 혹여나 받지 못하게 되더라도 마음이 상해서 우정에 금이 가지 않을 정도의 돈을 주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내가 곧 써야 할 돈인데 친구가 돈을 갚기로 해 놓고 안 갚으면 친구를 미워하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원망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친구라면 모름지기 내 모든 걸 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설정을 해 놓으면 원망하는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한데도 자책을 하게 된다. 그러면 관계가 불편해지고 점차 소원해진다. 이를테면 200만원을 빌려 주면 다음달에 갚겠다고 했던 친구가 6개월이 지났는데도 주지 않는다고 해보자. 전화를 거는 순간 빗 독촉을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안부를 묻는 것인데 도 왠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게 된다. 친구의 입장도 다를 게 없다. 그러므로 그럴 위험은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좋다. 한계를 미리 설정해 두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사랑하는 사람의 성격을 바꾸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못하는 것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유머가 없는 사람한테 유머러스해지라고 강요해 봐야 그가 하루아침에 바뀔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그가 못하는 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어야 한다. 이처럼 한계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관계를 잘 끌고 갈 수 있다.

친한 친구 사이에는 비밀이 없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굳이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을 털어놓을 필요는 없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어느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는데, 단지 친함을 증명하기 위해 비밀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부모 자식 사이도 마찬가지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듯 아무리 부모라 해도 병 수발을 해 주는 자식에게 고마워해야 하고 폐를 덜 끼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식이니까 부모에게 헌신하는 게 당연하다며 아프다는 핑계로 자식에게 막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각자가 가진 욕심과 욕망이 충돌할 때 한계를 미리 설정해 놓으면 나와 상대방 모두를 보호할 수 있고 관계를 더 안전하게 지속시킬 수 있다. 물론 누군가 나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기대를 저버리는 건 엄청 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기대를 저버린다는 건 '당신이 나에게 실망하고 나를 싫어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다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서로 존중하고 진심으로 아끼는 관계는 각자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 선이 어디까지인지 섬세하게 조율할 수 있을 때 만들어진다. 즉 돈을 빌려 주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친구 사이가 틀어진다면 그는 애초에 당신의 진짜 친구가 아닐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관계를 만들어 갈 때는 먼저 나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마음이 상하더라도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감정적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파악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 한계선을 기준으로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도 내 삶까지 망가질 것 같을 때는 미안하지만 더는 도와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자신보다 남을 더 신경 쓰느라 정작 자기 마음이 곪아 터진 것을 보지 못하고, 좋은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솔직한 감정을 억누르며 혼자 상처받아 온 사람일수록 한계 설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끝까지 사람을 믿고 사람과 더불어 살기 위해 해야 할 최소한의 장치가 바로 한계 설정인 것이다.

 

 

 챕터5.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더 많은 실수를 저질러 볼 것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소년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나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구절이다.

모든 성장엔 고통이 따른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머물고 있던 세계를 깨트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성장통' 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성장통을 고통스럽게만 바라볼 필요가 있을까.

알을 깨고 나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신나는 일이다. 갑갑하고 좁은 세계를 벗어나 날개를 확 펼치고 날아갈 수 있는데 그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드넓은 하늘을 훨훨 날면서 느끼게 될 자유를 생각해 보라.

나는 그것을 대학교 연극반 활동을 통해 깨달았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사람들 앞에서 책 읽는 것조차 힘들어할 만큼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았다. 그 성격을 고치고 싶어 대학에 들어가자 마자 연극반에 들어갔다. 하지만 막상 발성이며 동 작이며, 남들 앞에서 하려니까 용기가 나지 않았고 힘들어서 그만둘까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러다 1학년 겨울방학 때 연극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에서 맏딸 역을 맡게 되었다. 비중도 크지 않았고 무대 위에선 실수 연발이었지만 그럼에도 첫 공연을 끝냈을 때의 희열은 최고였다. 내가 그 많은 관객 앞에서 연기를 해냈다는 성취감에 너무나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무언가 내 안에서 불꽃처럼 터지는 것도 느꼈다. 무대 위에서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 다. 소심하고 부끄러움을 잘 타는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역에 몰입해 그 역할을 해낸 경험이 나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해 주었다. 나는 잘하는 게 하나 도 없는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나도 뭔가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다 음부터는 두려워도 무엇이든 또 도전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자부심은 기대와 성공의 비율에 좌우된다고 말했다. 성공의 경험이 쌓일수록 자부심 또 한 강화된다는 뜻이다. 또 자부심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다. 그렇게 도전하면 할수록 성공의 확률 또한 올라간다.

성공이 성공을 부르는 연쇄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알을 깨고 나아가는 것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새로운 세상 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배우게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예전에는 몰랐던 나를 발견함으로써 또 다른 성장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연극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여전히 힘들어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정신 치료의 방법으로 사이코드라마를 시도할 때 나는 해 보기도 전에 못 한다고 했을 것이다.

 

 

 

한 번쯤은 무엇에든 미쳐 볼 것이다

평소에는 시간도 잘 안 가고 사는 것도 지루하고 재미없는데, 이상하게도 시험 때만 되면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아지고 보고 싶은 영화와 책도 많아지며 삶에 의욕이 넘친다. 그래서 항상 결심을 한다.

'이번 시험만 끝나 봐라. 읽지 못하고 쌓아 둔 책들도 다 읽고, 영어 공부도 더 하고... 이전처럼 게으르게 빈둥거리면서 살지 않 겠어

그런데 웬걸 시험만 끝나면 그동안 정신을 일깨웠던 신선한 의욕과 결심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또다시 마지못해 해야 할 것들만 겨우 하며 빈둥거리기 시작한다. 다음 시험 기간이 되면 또다시 의욕은 살아나지만 애석하게도 그때는 시험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 에 건전한 의욕은 항상 뒤로 미뤄지게 마련이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러면서도 도대체 내가 왜 그러는지 의아했다. 아니, 시간이 많을 때는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거리다가 막상 시험 때만 되면 왜 그렇게 하고 싶은 게 많아지느냐 말이다. 막연히 시험 공부가 하기 싫으니까 다른 것을 하고 싶은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시험 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동력 시스템이 활성화된다. 잠자고 있던 뇌의 의욕적인 부분들이 꽈리 터지듯이 여기저기서 톡 톡 터지기 시작하면서 다른 의욕과 호기심도 같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시험 때만 되면 얄궂게도 하고 싶은 게 많아질 수밖에 없다.

사실 시험 공부처럼 하기 싫은 게 어디 있으랴. 그러나 다들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밤새 어려운 문제 하나를 붙들고 씨름하다가 새벽녘쯤 그 문제를 풀었을 때의 기쁨과 뿌듯함을. 그럴 때는 밤이 언제 갔는지 새벽이 언제 왔는지조차 모른 채 그 문제에 집중 한다. 어쩌면 문제를 풀었다는 사실보다 내가 무엇엔가 몰두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기뻤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밤새 문제를 못 풀었을 때조차 아침에는 왠지 모를 뿌듯함과 충만함으로 가슴이 벅찼으니까.

무엇엔가 미쳐 본 적이 있는가? 마치 열애라도 하듯 무엇엔가 풍덩 빠져 본 적이 있는가? 자나 깨나 그 생각이요.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뜨겁고 두근거리며, 그 일을 할 때면 자신조차 잊어버리는 무아지경에 빠져 본 적이 있는가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이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무언가에 미쳤을 때 느끼는 환희와 그것이 가져다주는 자신감. 성과를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에겐 연극이 그랬다. 대학교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 연극을 접한 뒤로 나는 차츰 연극에 미쳐 갔다. 돈만 있으면 연극을 보고 연극 관련 책을 사서 읽었으며, 누구보다 연습실에 먼저 나가 연기 연습을 했고, 길을 가다가도 내가 맡은 배역을 생각했다. 추운 겨울엔 두 달 내내 연습실에 연탄을 때 가며 공연을 준비했다. 다행히 연기 실력도 조금씩 늘어 본과 4학년 때는 연극 '노비문서'에서 취발이라는 남자 광대 역할을 맡아 탈춤부터 디스코까지 소화해 내며 무대를 휘젓고 다니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연출가에게서 연기를 더 할 생각이 없느냐는 칭찬을 들었을 때는 하늘을 날 것만 같았다. 오죽하면 의대를 그만두고 연극영화과에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연극에 미쳐 있던 그 시절 의대 과목 성적도 함께 올랐다는 점이다. 다른 친구들은 연극하느라 낮은 학점에 학사 경고를 받기 일쑤였는데 나는 오히려 장학금을 타기도 했다. 사람들은 방학이면 연극에 빠져 공부할 시간도 없는 내가 어떻게 장학금을 받는지 의아해 했다. 나 역시 말로 잘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속으로는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다. 연극에 몰입했던 경험이 나에게 집중력과 자신감을 키워 주었으며, 공부에 미치는 법 또한 알게 해 주었음을 말이다.

하나에 미칠 줄 알면 다른 것에도 미칠 수 있다. 열애에 빠진 사람에게 세상이 신비롭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처럼. 어느 하나에 미치게 되면 세상과도 연애를 하게 된다. 그리고 내 안에서 피어오른 열정은 나와 다른 사람들과 세상, 그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든다. 더 나아가 교육심리학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나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주장하며 무언가에 빠져서 몰입하는 시간이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내는 일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한다.

대학 시절 연극에 미쳤었던 경험은 지금까지 나를 지해 주는 힘이 되었다. 무대 위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 본 경험은 환자 들의 마음을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 주었고, 홋날 사이코드라마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또한 지금 이렇게 책을 쓰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황농문 교수는 (몰일)에서 몰입 자체가 주는 긍정적 효과와 행복감에 대해 설명했다. 몰입을 하면 할수록 뇌의 시냅스가 활성화 되고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창조성과 의욕이 증가되고 각성과 쾌감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면서 재미의 강도가 세지고 역량과 성과도 높아진다고 한다.

어떤 것에 미친다는 것은 열정을 가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열정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뜻이다. 미칠 듯한 열애는 무모한 젊은 시절에나 가능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제외하고 무엇엔가 미쳐 보는 것은 언제든 가능하다. 그러니 한 번쯤은 일이든. 취미든 인생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일에 당신을 다 던져 보라. 미치도록 무엇엔가 열중했던 경험은 당신이 훗날 무엇에든 도전하고 성취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또한 살아 있음의 환희를 당신에게 안겨 줄 것이다.

 

 

내 인생의 버킷 리스트 10

'버킷 리스트(bucket list'는 죽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은 일들을 적은 목록을 가리키는 말로 동명의 영화 때문에 유명해졌다.

영화 '버킷 리스트'에서 주인공인 카터는 어느 날 갑작스레 청천벽력 같은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대학 시절 역사학 교수를 꿈 꾸었지만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는 꿈을 접고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며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해 왔다. 반면 또 다 른 주인공 에드워드는 빈털터리나 다름없는 카터와 달리 병원을 열여섯 개나 가지고 있는 억만장자인데, 역시 폐암 말기라는 선고를 받는다. 병실에서 처음 마주친 그들은 같은 방을 쓰기를 꺼려 하지만 몇 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은 서로의 마음을 열 게 만든다.

한편 카터는 대학 신입생 시절 교수가 과제로 내 준 '버킷 리스트'를 떠올리며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 본다. 하지만 막상 시한부 선고를 받자 의미 없다고 생각해 버킷 리스트를 버렸는데 에드워드가 그것을 발견하고는 그냥 이대로 죽기는 아깝다며 자신과 함께 실행해 보자고 제안한다. 스카이다이빙 하기, 문신하기, 세렝게티에서 사냥하기, 머스탱 자동차로 레이싱 하기, 인도 타지마할 방문하기, 눈물 날 때까지 크게 웃어 보기, 다른 사람에게 도움되는 일 하기, 장엄한 광경 보기 등등 그들은 병원을 나와 3개월 동안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실행에 옮기면서 잃어버렸던 삶의 열정을 되찾고, 오랫동안 연락을 끊었던 가족을 찾고, 돌보지 않고 방치했던 자아를 찾으며 인생의 의미를 깨달아 간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하게 될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오는 게 아닌가.

"고대 이집트인은 죽음에 대해 멋진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거 아나? 영혼이 하늘에 가면 말이야. 신이 두 가치 질문을 했다 네. 대답에 따라서 천국에 갈지 말지가 정해졌다고 하지. 인생의 기쁨을 찾았는가, 자네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했는가.

대답해 보게."

나는 인생의 기쁨을 찾았을까? 내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했을까?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였다. 그 뒤로도 가끔 그 대사를 떠올리며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 보곤 했는데 2015년 이 책을 낼 당시 작성한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1. 그림 그리기 : 초등학교 때 나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내가 보는 세상을 붓을 가지고 그림으로 그려 보고 싶었다. 요즘 친한 사람들 에게 문자 대신 가끔 스마트폰으로 그림을 그리고 짧은 메시지를 적어 보내는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 보고 싶다.

2. 우리나라 바다 한 바퀴 돌기 : 동해. 남해. 서해를 한 바퀴 쭉 돌아보고 싶다. 동행이 있으면 좋겠지만 혼자라도 괜찮다. 몸이 힘들어 한꺼번에 돌지는 못할 테니 몇 번 나눠서 가야지.

3. 다른 나라 언어 배우기 : 죽기 전에 언어를 두 가지는 더 배우고 싶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중국어와 러시아어 혹은 스페인어. 다 른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을 만나고 이해함으로써 내 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믿기 때 문이다문이다문이다문이다문이다

4.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서 대접하기 : 먹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는, 그래서 잊을 수 없는 진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대집하고 싶다.

5.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에게 욕 실컷 하기 : 너무 고상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았다. 욕생이 할머니처럼 나에게 상치 준 사람들을 향해 시원하게 욕 한번 피붓고 싶다.

6. 세상의 모든 책 읽어 보기 : 오래 집중하기가 힘들고 눈이 점점 침침해지는 탓에 책 읽기가 쉽지 않아서인지 자꾸 조바심을 내게 된 다. 더 시간이 가기 전에 더 많은 책을 읽고 싶다.

7. 책 한 권 쓰기 : 그동안 다섯 권의 책을 냈지만 부끄럽기 그지없다.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고 그들의 마음을 따 뜻하게 만들어 줄 책 한 권을 쓰고 싶다.

8. 남편과 무인도에 들어가 일주일 지내기 : 그냥 그러고 싶다.

9. 가족들과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기 : 사위와 며느리도 함께 말이다.

10. 조용히 온 데로 다시 가기 : 죽을 때 요란 떨고 싶지 않다. 조용히 삶을 마무리하고 잘 떠나고 싶다.

 

그런데 책을 내고 난 뒤 의외로 버킷 리스트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내게 그중 몇 가지를 실천했느냐고 묻기도 했다. 꼭 해야지 하는 마음에 작성하긴 했지만 아직까지 몇 가지는 실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혹시나 궁금해할 사람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정리를 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그림 그리기 : 스마트폰으로 그림을 그린 것들을 모아 책을 냈다.

2. 우리나라 바다 한 바퀴 돌기 : 친구들과 동해, 남해, 서해를 부지런히 다녔다. 앞으로도 더 돌아볼 생각이다.

3. 다른 나라 언어 배우기 : 병이 깊어지면서 시력과 집중력이 너무 떨어져 아직 못 했다.

4.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서 대접하기 : 서 있는 것이 힘들어 요리를 만들기가 어렵다. 특히 닭강정을 맛있게 만들어 대접하고 싶었는데 아쉽다.

5.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에게 욕 실컷 하기 : 너무 고상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사는 것은 그만두었는데 욕은 실컷 못 했다. 남편 욕은 좀 했다.

6. 세상의 모든 책 읽어 보기 : 이 또한 병이 깊어지면서 아직 못 했다.

7. 책 한 권 쓰기 : 이 책을 포함해서 다섯 권의 책을 더 썼다. 열 번째 책을 마지막으로 책 쓰기는 끝이 났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도움 이 되는 책을 썼는지는 모르겠다.

8. 남편과 무인도에 들어가 일주일 지내기 : 그냥 그러고 싶은데 아직 못 했다.

9. 가족들과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기 : 사위와 두 손자까지 모여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이만하면 잘 산 것 같다.

10. 조용히 온 데로 다시 가기 : 여전히 나는 그럴 수 있기를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22년차 파킨슨병 환자로서 버킷 리스트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더 이상 버킷 리스트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몸 이 허락하는 대로, 그리고 내 삶이 허락하는 대로 흘러가듯 살아가고 싶다. 일단 오늘은 예쁜 옷을 입고 외출을 할 생각이다.

한 발짝 한 발짝 움직이다 보면 나는 또 다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반가운 사람을 만난다면 무척 행복할 것 같다.

 

 

 

 

 

 

 

 

 

 

 

 

 

 

 

 

 

 

 

 

 

 

 

 

 

 

 

 

 

 

[Book report after reading]

항상 이런 종류의 책을 읽고나면 만일 나도 저자와 같이 파킨슨 병에 걸렸다면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극복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데 결론은 정말 자신이 없다. 그래서 이런 분들을 보면 정말 너무 존경스럽고 위대하다고 느껴지는 것 같다.

저자는 너무나 바쁘게 살아온 자신의 일상에 대해서 후회를 하고 있다. 하늘을 쳐다보는 여유도 없이 바쁜 일상속에서 살아가는 일. 왜 힘들고 지칠 땐 그냥 쉬지 않고 달려왔을까?  완벽해질 필요는 없다나를 더 아껴주고 음악을 듣고 달콤한 휴식을 허락해 주겠다고 했는데그렇게 열심히 살아오셨기 때문에 후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그렇지 않은 삶을 살았던 분들은 어쩌면 반대의 삶에 대해서 후회를 하지 않았을까?

한편으로는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정말 놀면서 여유만 갖고 살았던 사람이라면 이렇게 좋은 책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얘기하는 삶은 그저 단순히 바쁘게 살지 말고 여유 많이 갖고 쉬면서 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자기 책임을 다하고 살면서 쉼과 휴식을 병행하는 삶을 살라고 얘기해 주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내 삶도 가끔은 빡빡한데 쉴 새 없이 달려왔지만 뭔가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다. 저자의 충고를 받아들여 여유를 가져야 할 까 싶은 마음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난 저자처럼 정말 충실히 살지 않았기 때문에 더 달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책에서 저자가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했다. 의사가 되셨고 외모도 괜찮으며 나름 엘리트로 살아왔을 텐데 저자까지도 열등감이 있었다면, 열등감은 모든 인간이 다 가지고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각자 그릇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느끼는 부족함과 열등감의 정도도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는 부족한 부분을 쉽게 채울 수 있고 어떤 사람은 평생 채우지 못하면서 사는 것은 아닐까

돈으로 비유를 하는게 적합한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말한다. 돈이 많다고 하는 사람들 보다 돈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하지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돈이 부족함의 정도는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돈이 없어서 밥을 못 먹는 사람이 있고, 돈이 없어서 학교에 못 가는 사람 그리고 돈이 없어서 고급 레스토랑에 자주 못 가고 누구는 큰 집으로 이사를 못하고 모두 돈이 없다고 말 하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부족한 돈의 기준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모두 똑같이 돈이 없지만 부족한 부분의 일정 금액을 채우라고 한다면 돈 주머니가 큰 사람이 더 쉽고 빠르게 채울 수 있겠듯이 열등감도 개인의 그릇의 크기에 따라서 쉽게 채우고 극복하고 성장을 하는게 아닌가 싶다.

열등감을 극복하려면 더 많은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내 내면을 채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저자가 얘기해 주었듯이 나의 강한 부분인 장점에 집중 해 그것을 강화 시키도록 해야겠다.

 

 

방향성만 맞다면 하다 보면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1%가 되더라도 하는게 맞다.’

남편을 안다고 아내를 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무기력한 사람이 되지 말아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외부 상황이 바뀌기만을 바란다.’

완벽한 때를 기다리지 말고, 60퍼센트만 채워졌다고 생각되면 길을 나서 보라.’

 

책 속에 좋은 내용은 너무 많지만 떠오는 몇 가지 문장을 위에 적어 보았습니다.

이 책은 내가 뭔 가가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다시 읽으면 심적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저자의 초 긍정의 마음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고통과 고통 사이에는 반드시 덜 아픈 시간이 있다. '

'그래서 일어났고 하루를 살았고 다음날도 살았다. '

'하고 싶은 것은 하면서 살겠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고 가는 게 맞느냐, 아니면 어느 정도만 되면 하는게 맞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저자가 알려 주었고 부가적으로 저자의 말에 내가 공감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Small Success, 작은 성공이 큰 성공을 만든다. 할 수 있는 것을 시켜서 성공경험을 많이 갖도록 해야 큰 성공을 달성할 수 있다.”

 

책을 읽고 내가 올 해 해야 할 일은 어디에서 든 통할 수 있는 나의 강점을 더 보완하고 실력과 근육을 키우는 23년도가 되도록 계획한 목표를 세부적으로 다시 설계를 해야 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에 23년도 버킷리스트를 다시 작성을 해봐야 겠다는 숙제가 생겼습니다.

 장자, 도를 말하다.’ 이 책을 나중에 꼭 한번 읽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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